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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08. 2023

출근 첫날, 고맙고도 감사한 보안대원 B 씨

 그날 하루의 시작을 어떤 말로 표현하면 걸맞을까?


   ‘맨몸’


 출근 첫날, 이 말 말고 떠오르는 단어가 딱히 없다. 복장 등 준비물에 대한 어떤 말도 없었다. 24시간 하루 꼬박 근무를 해야 함에도 그 어떤 말을 내게 들려주지 않았다.  

 보안 경비업체 관계자가 전날 전화해서 하는 말이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고 대뜸 묻는다. 첫 전화는 어떤 대원이 몸이 아파 나오지 못할 것 같으니 4~5일 후 즉, 12월 5일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고.

 그러고는 숨 돌릴 시간조차 없었다고나 할까. 전화가 끝나고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을 무렵 또다시 낯선 휴대폰 번호가 떴다. 다른 때 같으면 주소록에 입력되어 있지 않은 전화는 받지 않았다. 대개 투자나 매매 권유 등 엉뚱한 전화가 대부분인지라. 하지만 그날은 울려대는 벨소리를 듣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 전화를 해 왔던 보안실장이었다. 면접을 볼 때에도, 궁금한 내용에 대해 물을 때에도, 핸드폰 대신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사무실 전화번호만 알려주었는데, 본인의 핸드폰 번호를 노출한다는 것은 취업이 확정되어 출근하라는 신호 아닌가. 면접을 보고 거의 2개월이 흘러갈 즈음에.  

 전화를 하자마자 첫마디가, 본인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 사람 중에 제일 먼저 받은 사람이 나라며 당장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모 대원이 건강 상 갑작스레 그만두어 결원이 생겼다면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고나 할까. 남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현장에 결원이 생겼으니 올 테면 오고, 아니 온다고 하면 다른 사람을 뽑겠다는 암시도 섞여 있었다. 그건 그렇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나였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며칠 있다 출근하나,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12월 1일 첫 출근!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이른 새벽 5시에 눈 떠 장롱 속을 뒤져 색깔에 맞는 동복을 꺼내 입었다. 직장 다닐 때의 일상복이 아닌 보안요원에 가까운 옷을 찾아 입고 집을 나섰다.

 정문 초소에는 근무자 3명이 있다. 다들 보안 대원 특유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두툼한 점퍼와 야광 조끼를 걸치고,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그 시간에도 민원 요청이나 비상 출동이 있으면 즉시 빨강 경광봉을 집어 들고 튀어나갈 자세로 나를 맞아주었다. 

 보안실장은 출근 전이었지만 나 말고 또 한 사람이 나보다 먼저 나와 근로계약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사무실 책상 한 칸을 차지하고 관련 서류를 살피니 근로계약에 필요한 개인 정보 동의서, 성범죄 사실 조회 동의서 등이 놓여 있었다. 단 시간 근로 즉, 감시대상 근로자로서 계약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나니 7시 30분을 훌쩍 넘겼다.

 직장 다닐 때 같으면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받거나 신규 새내기가 오면 밥 한 끼는 대접받는데 이곳에서는 식사 대접은커녕 일에 대한 얘기뿐이다. 쉬는 시간 거의 없이 지하로 갔다가 지상으로 올라가고 또다시 헬스장, 독서실, 카페가 있는 편의 시설 관리를 안내받는 등 현지 적응에 관한 지시가 이어졌다. 숨 쉴 시간도 없다고나 할까, 모든 업무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평시 여행을 가거나 볼일이 있을 때 그 지역을 스쳐 지나가기는 했으나 근무처의 속살을 들여다보지 않은 터라 낯설고도 낯설다. 채용이 확정되면 근무 바로 전날이나 적당한 시간에 주변 환경도 익히고 업무 적응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하나 상황이 급한지라 나는 그런 준비도 없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내가 맡은 경비 업무 분야를 크게 나누면 단지 내 지상. 지하 안전 순찰, 주차 관리, 교통 안내, 화재 예방이나 비상 출동, 민원 관련 업무, 미화원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 분리수거함 정리, 음식물  처리 통 교체 보조가 주된 업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경비원이 하는 아주 밑바닥 업무는 없었다. 주변 청소와 분리수거 음식물 처리는 별도로 직원을 채용해서 관리를 맡기고 보안 대원들은 아파트 단지 순찰, 차량관리 업무가 거의 대부분이다.

 아파트가 18개 동 2천5백 세대 넘는 대단지여서 발품을 파는 일이 많아 고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궂은일은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파트 관련 업무 종사자로서는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로 하는 일이 허접스럽지는 않다.  

 나는 후문 초소에 배치되었다. 2명이 24시간 근무 후 교대하는 근무형태였기에 첫날이라고 해서 누가 내 업무를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

오전 6시 30분경부터 출근해 정문 초소에 와서 입사에 필요한 갖은 서류를 작성하고 지시 사항을 전달받는 것을 시작으로 현장을 누비다 보니 어떻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점심시간에 닿아 있었다.




 전날 부랴부랴 출근하라는 말만 듣고 오다 보니 챙길 것을 하나도 챙기지 않은 터라 막막했다. 점심, 저녁 두 끼의 식사는 물론, 잠자리에 필요한 침구류도 하나 준비하지 못했다. 그 추운 겨울날 귀마개며 방한모에 방한화도 없이 근무하러 나왔으니 무슨 배짱인가.  



 그 지경에 같이 근무하는 원 B 씨가 도시락을 꺼내 놓는다. 내가 그걸 먹으면 B 씨 또한 저녁거리를 별도로 마련할 수 없는 걸 아는지라 밖에서 사 먹고 들어오겠다고 해도 근무도 낯설고 지역도 낯서니 같이 식사하며 이런저런 얘기라도 나누자고 한다.

 보안 요원들은 대개 점심 저녁 도시락 2개를 싸 갖고 다닌다. 한겨울이건 한여름이건 도시락에 의존해야 하는 환경이다. 내가 B 씨의 도시락을 먹게 되면 저녁은 라면으로 때울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B 씨는 선뜻 자기 도시락을 내준다. 거절도 한두 번이지 성의를 받아들이는 게 그분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변변치 않은 반찬일지라도 내겐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도 의미가 있는 식사였다.


 점심을 해결하고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추위에 맞서야 하는 전투 장비(?)인 방한화와 방한 장갑, 귀 덮개, 그리고 잠자리에 필요한 담요와 베개를 준비해 달라고. 그 말끝에 B 씨와 점심 먹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내에게 전화하고 서너 시간 정도 흘렀을까. 외곽 근무에 필요한 용품과 침구류를 준비했다며 아내가 내가 근무하는 곳으로 오겠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녁 시간 맞춰 도착한 아내는 방한화며 귀마개, 방한모 등을 사기도 바빴을 텐데, 도시락을 꺼내 놓는다. B 대원의 성의를 생각해 이 먹으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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