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당 Sep 08. 2023

어느 경비원의 하루

 "띠리링 띠리링"


울림이 탁하다. 카랑카랑한 소리음이라면 반가움에 저절로 손이 가지만, 가래가 끓어 목이 잠기는 듯한 목소리 같아 짜증이 난다.

 이른 새벽, 잠에서 깨는 시간은 5시 40분 경이다. 그 시각에 맞춰 핸드폰 알람 설정해 놓는다. 늘 일어나던 시간보다 1시간 30분 정도 빨라졌다. 평시 같으면 그 시간엔 달콤한 잠에 있을 시간인데, 그 달달한 잠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머리는 전날 저녁에 미리 감는다.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06시경에 집을 나선다. 달걀 프라이 하나에 미숫가루 한 잔 넘기는 게 아침 식사라고나 할까. 그 시간엔 무얼 먹어도 입맛이 없다. 때는 12월, 출근하고자 밖 나니 사위가 캄캄하다. 칠흑 같다고 할까. 수은등만이 길을 밝힐 뿐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무지 어둡다. 도로엔 나처럼 먹고살기 위해 줄달음치는 차량만 간간이 보일 뿐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07시에 업무에 돌입한다.


내가 맡은 일은 단지 내 차량 출입 및 주차 관리업무가 주된 업무다. 그 외에 입주민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교통 안내를 하고 유아들의 등하교 시간에 맞춰 차량 안전지도를 한다. 주차질서 유지 업무 외에도 따라붙는 업무도 상당하다.


 외부 방문자들을 위해 공동현관문 출입을 돕고 화재나 비상 대비, 민원 발생에 따른 현장 출동, 한 겨울엔 제설 작업을 하는 등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일이 벅차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미화원을 대신해 분리수거장에서 박스를 정리하고 음식물통이 차면 교체한다.

 

 첫 근무지는 2 초소였다.


 가 상가가 형성된 곳에 마련되어 있어 주민들의 입출입이 잦다. 학원, 어린이집 차량 및 외부 방문객 차량까지 줄잇는다. 그런데다 공동 현관 출입문을 열어달라는 벨소리로 하루가 시끄럽다. 입주민 중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 중 간혹 아파트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거나, 키 작은 어린애까지 호출하기라도 하면 잠시 자리를 비우기도 곤란하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선 잠든 아이가 벨소리에 깨거나 놀란다며 세대 호출을 직접 하지 않고 경비실을 통해 하다 보니  잠시라도 초소를 비울 수 없다. 공교롭게 호출이 올 때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게 되는 경우, 중간에 오줌 줄기를 자르고 나올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에 직면한 적도 여러 번이다.

 단지 순찰 및 맘스 스테이션 교통 안내가 주 업무지만, 이밖에도 수시로 화재경보가 울리고, 119구급차나 112 경찰차가 필요에 의해 현장에 출동한다. 그러면 대원들도 덩달아 바빠진다. 빠른 시간 내에 현장으로 달려가 긴급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단지 배치 및 지형지물 눈에 익을 때까지 파악해야 한다. 그런 적응 단계에 있는데 정문 근무지로 옮겨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다.

 낯선 현장에 배치고 보니 모든 게 새로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배우다시피 해야 했다. 업무는 유사하지만 대원들과의 대인관계부터 청소, 초소 및 상황일지 기록까지 눈코 뜰새 없다. 더욱이 차량 통제시스템을 이해 못 하거나 처음 대하는 사람과 만나면 일일이 사용법과 안내 절차를 설명해 줘야 . 하루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아들 집에 왔다며 문을 열어 달란다. 하여 차량 출입에 관한 절차를  인터폰으로 알려드리는데 낯설기도 하고 절차가 복잡해 그러시는지 그분의 아내와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한편, 나 또한 나이 들면서 앞으로 나올 각종 첨단 기계장치에 잘 적응할까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업무를 마비시켰다.  전염된 대원들이 연달아 집에서 감금당한 채 출근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자리를 메다. 본의 아닌 대원들의 사고로 출근하지 못 빈자리를 메울 수밖에 없었지만, 코로나19의 전염에 들지 않는 나 자신이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돈이 뭐라고 비양심적인 경비원도 있었다. 돈 한 푼이 새로운지 몸이 괴로운데도 이를 숨기고 끝까지 출근했다. 코로나 감염 여부 검사를 하여 그 상태에 따라 움직여야 하거늘, 전파력이 강한데도 타인에게까균을 옮기게 하여 멀쩡한 사람 방 안에 가두게 하는 비양심인 사람 때문에 한동안 술렁였다. 두 명을 전염시키고도 모자라 자신은 계속 출근을 고집하는 대원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경비업체 현장 대리인 보안실장이라는 직책을 부여받고 근무를 한다. 책임자답게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코로나19 전염 의심 대원을 격리조치 하야야 한다.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경비원이 있으면 병원에서 감염여부 진단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제출하라고 했더라면, 일이 그렇게 크게 번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게 나는 후문에서 정문, 정문에서 후문, 다시  후문에서 정문으로 옮겨 다니며 깍두기 신세로 전락했다. 업무에 익숙할만하면 옮겨가고 그러기를 몇 번, 우연 아닌 우연 속에 한 달을 보내야 했다.  

 후문 초소에선 둘이 짜인 일과표에 의해 움직인다. 러다 보니 행동이나 움직임 기계장치나 로봇의 몸짓과 별다르지 않다. 누구 하나 사정이 생겨도, 몸이 괴로워도 대신 일해줄 사람 없다.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고,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처럼 무를 나가야 한다. 감정이나 사고가 융합되지 않는 행동, 몸 따로 정신 따로, 영과 혼이 분리된 것 같은 공허에 빠지기도 다.

 정문 초소엔 방문객들 전용 출입구가 마련되어 있다. AI인공 지능의 시대에 사는 지금, 입주민이나 방문객들은 게이트 통과 시 절차와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멈춰 서야 한다.

 등록된 차량이라면 모를까. 처음 오는 방문객이거나 어쩌다 가족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통제에 따라야 한다. 절차 또한 까다롭다. 출입 차량 시스템 창에 방문하는 세대와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확인 절차를 일일이 밟아야 한다.

 대개 젊은이들은 인터넷 기기에 익숙하다 보니 처음 대해도 그동안의 학습효과로 기계장치의 안내에 따라 손이 저절로 가지만 나이 먹은 세대일수록 쩔쩔맨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벨을 눌러 초소에 있는 대원을 불러낸다.

 퇴근 무렵 차량이 몰리면 보안실의 대원들은 매뉴얼대로 처리할 수가 없다.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도로까지 통제하느라 야단법석이다. 뒤에서 기다리는 차량들은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방문객 차량 운전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경적을 울린다.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런 화는 대원들에게 돌아온다. 나이 먹은 것도 서러운데 어눌한 손동작까지 놀림을 당하니 화가 나나 보다. 문이 안 열린다고 소리치고, 터치스크린 조작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알려 달라고 대원들에게 짜증을 내다.

 하긴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기는 하다. 터치스크린 화면에 세대 방문을 누르면 차량 확인 절차를 확인하는 창이 뜬다. 방문하는 동과 호수를 입력하고 방문객의 전화번호까지 적어야 한다. 자주 들락거린 사람들은 식은 죽 먹기인데 음 그 화면을 대하는 사람들은 그 조차도 만만하지 않다.

 물론, APP을 통해 세대 방문에 따른 사전 예약을 해 놓으면 그 절차를 따르지 않고 확인 버튼 한 번이면 된다. 하지만 그곳을 처음 방문하거나 인터넷 기기에 익숙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주변도 낯설고 먼 곳을 달려온 피로감도 있는데 편안히 차를 아파트 단지 안에 밀어 넣지 못하게 하니 여간 불만이 많은 게 아니다. 어눌한 손놀림을 지켜볼 수 없어 대원들이 종종 도와주는데 이런 분들이 어디 한둘이랴! 방문객 대신 절차를 밟아주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해줬다가 뒤에 오는 차량들의 부탁이 이어질까 봐 청을 다 들어주지도 못한다.

 차량 통제를 그렇게 까다롭게 하는 이유는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다. 2,500여 세대가 모여 산다면 한 집에 차량 두 대 정도만 잡아도 5,000여 대가 넘는다고 봐야 한다.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애들에게도 핸드폰을 사 주듯, 1세대 당 4명이 산다고 하면 6,000대도 넘을 것이다. 입주민 차량 외에도 택배차량, 하자 보수 차량, 어린이집이나 학원, 유치원 버스가 드나들고 각종 음식 배달을 하는 오토바이까지 수없이 드나드니 초소에 근무하는 대원들은 차에 눌리기 마련이다.

 절차가 복잡해 방문객들은 문 앞에서 문을 열려다 문에 갇히기 십상이다. 차량 등록을 했는데 문이 안 열린다고 소리치고, 기계장치에 오류가 있어 문이 안 열리기도 하는 날엔  그를 처리하는 스트레스 또한 만만하지 않다.

 그것만이 아니다. 차량 단속 및 관리 외에도 교통지도, 지상 및 지하 주차장 순찰, 거기다 민원 처리까지 하루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금세 저녁 시간에 닿는다. 하루 24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간다.

작가의 이전글 출근 첫날, 고맙고도 감사한 보안대원 B 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