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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08. 2023

경비 교육을 받다

 도전하는 용기가 아름답다고 했다. 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수많은 이력서를 내고 여러 사업장에 들러도 보고 전화 면접을 봤다. 그렇게 일자리를 찾던 중 충북경영자총협회 일자리 구인 부서에 들러 일자리 상담을 했다.

 그때가 2022년 6월 중순 땡볕이 내리쬐는 어느 날 점심 무렵이다. 일자리 상담 부서를 들른 것도 처음이고 상담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그동안 내 삶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그리 화려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들 앞에 내세워도 부끄러울 게 없는 이력인지라 상담받는 내내 심기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내려놓을 대로 내려놓아도 나를 불러주는 곳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심정 굴뚝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백수의 삶이 이러한데 옛날의 영광만 생각한다면 그보다 못난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곳에서 상담하고 이력을 등록했다. 당시 나는 경비원에는 관심이 없었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나 아무 도 갈 곳이 없었다. 하여 7월 초 다시 한 번 그곳에 들러 사정을 이야기하고 경비원도 좋으니 자리가 나면 안내해 달라고 하니 상담 부서 여직원은 대뜸 경비교육이수증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경비교육이수증’



 경비원으로 일하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할까, 어떤 교육을 받는단 말인가, 의문을 가진 게 사실이다. 몸 건강하고 성실하면 그깟 일 못할 것 없는데  경비업체에 취업하고자 한다면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고 했다. 경비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아예 경비 현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고. 3일 경비 교육을 받아야 취업 서류를 낼 자격을 부여하고 해당 업체의 관계자를 만나 면접을 볼 수 있으니 경비를 하고 싶으면 먼저 교육을 이수하여야 한다고.



 부랴부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경비교육에 관한 정보를 확인했다. 워크넷 구직 사이트에도 경비원 모집 공고문이 여럿 올라온 게 보였다. 모든 경비업체에서 구비 서류 첫 번째가 경비교육이수증 구비 여부였다.

 그랬다. 내가 여태 세상을 순진하게 살아왔구나. 세상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하루였다.  

  사단법인 한국경비협회 충북지방협회에서 경비원 교육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전화를 걸었다.

 여직원이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8월까지 지원자가 다 차 교육받을 수 없고 9월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9월에도 미리 신청하지 않으면 교육받기 어려울지 모르니 교육비 12만 원을 내고 사전 등록하라고 알려준다.

 그렇구나. 이곳 세계도 만만하지 않구나. 1963년 출생부터 기준을 삼는 베이비부머 퇴직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이마저도 취업이 어렵다고 난리다. 잠시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이번 기회마저 놓칠 것 같았다. 여직원이 알려주는 대로 계좌를 안내받아 교육비 12만 원을 입금하고 때를 기다렸다. 3일 동안 24시간 경비교육을 받는 교육장을 찾은 것은 2022년 9월 말이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려도 교육장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교육장 입구부터 접수대에 이르기까지 마스크를 쓴 채 접수증을 확인받고 있었다. 교육생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 넓은 강의실에 100여 명 정도가 들어차 있었다.

 교재 한 권을 받아 들고 접수 번호가 붙여진 책상에 앉았다. 오리엔테이션 강사가 교육생들의 면면을 살피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사방 각지에서 왔다고 손을 든다. 충주에서 첫 차를 타고 왔다고 하는 사람에, 모텔 하나 잡아 놓았다는 경상도 사나이도 있었다. 청주에 사는 사람만이 아닌 진천 괴산 등 타 시군에다 내 옆자리 짝꿍은 세종시에서 왔다고 했다.

사연도 다양하다. 나와 같이 퇴직하고 아무 일도 안 하다 온 사람에, 다른 곳에 일하다 일이 너무 힘들어 직종을 바꿔 보려는 사람에,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경비 재교육을 받으러 온 사람도 있었다.  



 3일 경비 교육 기간에도 이틀째부터 틈틈이 각 지역 일자리 센터 담당자가 나와 해당 지역 경비원 모집 등 일자리를 안내하고 교육이 끝나면 당장 취업할 수 있느냐 묻는다. 그러면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싶으면 일자리 지원서에 이력을 등록하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일자리를 찾던 중 충북경영자총협회 일자리 구인 부서에서도 직원이 나왔다. 전에 그곳에 들러 상담받아 얼굴이 익숙한 분이 있는데, 그 여직원을 만나니 반갑기조차 했다. 재차 이력을 써내고 교육 이수증을 받아 들었다.

 여름을 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는 듯  무심천에는 구절초가 듬성듬성 피고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꼬리를 치고 있었다. 꽃길 따라 산책로를 걸어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한결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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