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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나이, 나이

by 원당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그렇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머문 자리에 그대로 머물거나, 그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열든가, 선택은 둘 중의 하나뿐이다.




일 안 하고 빈둥빈둥 노는 사람이 이래서 쉬 늙는군. 수염은 더부룩하고 옷차림을 봐도 전형적인 백수의 표본, 낯선 사람이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첫 구인 원서를 낸 곳은 교육 관련 기관이었다. 회계, 행정, 예. 결산 등 전문가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어떤 일이든지 해낼 수 있는데 서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추측하건대 나이 때문이었다. 아무리 일을 잘할 것 같아도 나이 많은 사무직 종사원을 부려 먹기 어렵다고 판단했나 보다. 그렇다면 모집 요강에 나이 제한 내용을 담으면 좋으련만 현행 제도나 구인 관련 지침에 나이 제한 규정을 둘 수 없었나 보다. 법과 현실이 차이 날 수 없는 모순 속에 시련을 맛봐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농업 관련 기관에서 과수 병충해 예방 관련 계약직 모집 공고문이 올라왔다. 대학에서 그와 유사한 분야를 공부했고, 과수 농사를 하던 아버지 밑에서 과수 일을 배운 적도 있던 터라 서류를 갖춰 냈건만.

면접관 3명의 공통된 질문은 나이 어린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느냐, 그런 사람들이 시키는 업무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느냐는 등, 나이, 나이, 나이였다. 결국 나는 그곳에서도 여타 방문객들처럼 찾아줘서 고맙다는 사례의 답례품을 받아 든 게 전부였다.

퇴직 후의 현실, 사무직, 행정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음을 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하는 동안 업무와 관련된 법률, 판례까지 들여다보면서 그 누구보다도 업무에 능통한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가졌으나 세상은 그런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몇 년 동안 퇴직할 때까지 나는 여러 기관에서 면접관의 자격으로 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이미 내가 겪을 일을 미리 경험했다고나 할까. 모 기관에서였다. 응시생 중에 나이가 많아도 전문성이 있어 연구 부서로 발령 내면 좋을 것 같아 여러 면접위원과 의견 일치를 보았다. 하지만 관계 공무원은 나이 먹은 사람은 다루기 어려우니 그런 점을 고려해 달라고 신중하게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 내가 면접위원의 자리에서 겪듯 현실이 그러하니 더 나이 들기 전에 뭔가 변화를 주어야 했다. 변화가 없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밑바닥 일이라도 해보겠다고 결심했건만 자리가 나지 않았다. 나 자신을 더 내려놓기 전에는. 예전 직장에서의 명성과 자리를 머릿속에 남겨놓는다면 막일하는 현장에서도 나를 받아줄 리 만무했다.

각 기관 홈페이지 구인 구직란을 들여다보고, 워크넷 사이트를 찾아 나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았다. 또한 충북경영자총협회 일자리 구인 부서에도 들러 직원과 상담하고 이력서를 내는가 하면 일자리 박람회에도 물론 참석했다.

1톤 차량으로 점심 저녁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부터 선거사무 종사원, 물류 자재 창고 관리, 산불 감시 업무, 거푸집을 걷어내고 현장 정리 하는 공사장을 기웃거렸어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었다. 나이도 나이지만 그 분야의 경험을 중요시했던 것 같다. 이력서를 보고는 선생님은 이런 분야의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못 배워도 탈, 많이 배워도 탈이다.

가는 곳마다 현장 일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몇십 년 굴러먹던 사람들도 일을 견디지 못해 애를 먹는데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시집온 새색시 같은 사람이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일한다고 해놓고 며칠 안 가 못한다고 나자빠지면 새로 사람을 뽑아야 하는 등 신경 쓸 일이 많으니 며칠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전화를 달라는 곳도 있었다.

사무직 종사자였던 사람임을 알고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정중하게 돌려보내기도 했다.

경험도 경험이지만 나이 먹은 사람은 아예 쓰지 않겠다는 식이다. 만일 고용해 쓰다가 현장에서의 사고나 질병으로 쓰러지면 뒤처리가 곤란할 까봐 이력서의 나이를 들여다보고는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식이었다.

나이 먹었다고 똑 같이 취급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누구보다도 운동을 열심히 하고 체력도 젊은 나이 사람 못지않은데 ‘너도 그럴 것이다’ 취급해 버리니 도저히 내가 발을 들여놓을 구석이 없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이래저래 늙은 소처럼 인기가 없는 것인가. 소가 일할 나이가 되면 코뚜레를 뚫고, 멍에를 씌워 실컷 부려먹다가 나이 들면 도축장으로 끌려가듯 늙은 소 취급당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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