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모처에서 사무 보조와 관련한 계약직 모집 공고문이 올라왔다. 교육 정책 연구 기관으로서 나 자신도 그 분야의 일을 경험하였기에 반갑기조차 했다. 더군다나 그곳은 내가 평생 일한 교육청과 업무 스타일이 비슷할뿐더러 늘 하던 업무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괜한 일 욕심까지 났다. 행정, 예. 결산, 통계 등 늘 접했던 분야의 일이기에 경력과 전문성을 고려하면 나만의 자격을 갖춘 능력자는 없을 거라 판단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두툼한 경력증명서를 발급받아 이메일을 통해 원서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하도 답답하고 궁금해 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 업무 담당자나 기관 사정으로 늦어지는 거겠지 하고 며칠을 더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림에 대한 보답도 없이 달랑 메일로 날아온 건 몇 줄의 메시지였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하고 다음 기회에 어쩌고 저쩌고. 한 마디로 “당신은 부적격자입니다.”였다.
세상은 넓고 일자리는 넘쳐났지만 내가 갈 만한 곳은 마땅치 않았다. 기능과 기술 관련 구인 광고가 넘쳐나고 사회복지사, 요양 보호사, 식당 도우미나 운전원 모집은 많아도 행정 회계 사무 구인 일자리는 드물었다. 있더라도 나이 제한이 따랐다.
퇴직하고 보니 기술자, 기능공은 살아남아도 사무직 종사자들은 오갈 데가 없는 듯했다. 아무리 전문성을 갖춘 자라 하더라도 현장에서는 나이 먹은 사람들을 마음 놓고 부려 먹을 수 없어 그러는지 구인 업체에 전화로 문의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NO였다.
서류 지원 했다가 쓴맛을 본 기관에서 똑같은 근로 계약직 모집 공고문이 다시 올라왔다. 또다시 창피당하기 싫어 나이 제한이 있느냐고 대뜸 물었다. 담당자는 우물쭈물했다. 모집공고문에는 나이 제한을 쓰지 못할 뿐 서류 접수 과정에서 아예 제켜놓는다는 기분을 감출 수 없어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진 것인데 예상대로였다.상대방의 전화 목소리, 음색, 높낮이 등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진실을 숨길 때 드러나는 목소리, 뭔가 숨길 때 내는 전화 음성, 그대로였다.
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있는데 나이 많다고 뽑지 않는다. 업무 보조에 필요한 사람을 모집하고자 하나 나이 먹은 사람만 지원하고 젊은이가 없다. 젊은이가 지원할 때까지 구인 광고는 지속하겠다. 그런 심사 아닌가.
아예 그곳에 원서 내는 것을 포기했다. 내봤자 내가 낸 서류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이 분명하기에 다른 직장이나 근무처를 알아보기로 했다.
도교육청과 지역교육청 홈페이지를 열어 구인난 사이트를 수시로 확인했다. 학교 현장에서도 방과 후 강사를 모집했지만 예능과 체육, 일반 교과목 분야가 대부분인지라 내가 껴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 학생들 글짓기 지도 관련 공고문이 올라와 모집요강을 살피니 학교 현장에서 1년 이상 강사로서 지도한 경력을 필요로 하였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활동한 이력과 수상 경력 도 있고 잠시나마 1인 1 책 만들기 강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어도 학교장을 잘 알지 못하는 이상 내게 자리가 주어질 리 만무했다.
세상은 순진하지 않았다. 나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몰랐던 거다. 일하고자 하면 언제든지 일할 수 있을 거라 했는데 세상은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새로운 분야에서 일할 수 있을까, 내게도 일자리가 주어질까, 그런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지내왔건만, 현실은 이미 내 편이 아니었다.
평생 몸에 밴 직업 정신과 성실함, 내가 맡은 업무는 어떻게든 꼭 해내고 마는 성격,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자신감이나 열정만 있다고 해서 일자리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전문지식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어도 세상이 나를 불러주지 않으면 그런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