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차운전기능사, 용접기능사, 한식조리사가 정년퇴직 후 가장 인기 있는 일자리로 알려져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구인 사이트엔 여기저기서 기능공들을 찾느라 야단이다.
공직에서 퇴직 전 1년 간 사회 적응을 위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 기간 동안 나름대로 은퇴 후 삶의 방향을 저울질하고 일자리를 위한 준비를 한다. 남자들이라면 지게차 운전이나 굴삭기를 다루는 기능 훈련을 받고, 대형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급한 집안 일로 기능 훈련을 받을 여건이 아니었다.
기존에 따놓았던 부동산공인중개사 간판을 내걸고 부동산 중개업을 할까도 했다. 하지만 운영비에 사무실 임대료 등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자격증을 따자마자 문 여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저돌적이며 과감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기에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부동산 관련 업무 경험이 없다 보니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 시기에 공교롭게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가 창궐했다. 감기나 독감처럼 대수롭지 않을 것 같은 질병이라 생각했지만 상상을 초월했다. 전염병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사람 간에도 전염성이 강해 접촉하는 것도 막는 터라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웬만하면 사람을 만나지 말고 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여피로 취업시장마저 얼어붙었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하다못해 소규모 개인 시업 하는 분들도 인력 감축에 들어갔다. 있는 직원마저 어떻게 하면 줄일까 궁리하는 마당이라 일자리가 줄으면 줄었지 늘 리 만무했다. 개인 사업장을 운영하는 분들 중에 장사가 되지 않아 사업을 접는 분들도 많다고 각종 방송 매체에서 연일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세계 각국의 경제가 역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세계열강은 물론 대한민국도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거나 마이너스 지표를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경기악화로 인한 실업률 증가 수치가 뚜렷했다. 그런데다 코로나19 확산세로 사람들이 병들어 죽거나 후유증으로 삶의 질마저 떨어졌다. 설상가상 대인 기피증까지 생겨나니 여행은 물론 취미 활동마저 접게 만들었다. 온 세계가 그렇게 꽁꽁 얼어붙은 터라 내가 무슨 용쓰는 재주가 있으랴.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을 수밖에. 삶의 의욕마저 꺾인 상태에서 삼 시 세끼 밥만 축 내고 있었다.
내 마음대로 볼일 보고 놀러 다니는 자유인! 세월 탓에 꽉 매인 틀에서 벗어나 먹고 싶은 것 먹고 여행하고프면 짐 싸서 나가는 생활을 이어갔지만 무료함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휴식의 시간을 갖는 달콤한 시간을 가져도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끼니를 챙겨 먹는 것도 그렇고 잠자는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시간표에 짜 맞춘 생활은 어디 갔는지 없고 쓰고 버린 종잇조각처럼 일상은 구겨져 있었다.
코로나19를 핑계 댄들 여전히 나는 실업자다. 노는 것도 정도가 있지 더 나이 먹기 전에 어떤 일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일을 통한 경제적 도움보다 생활의 활력을 얻고 싶었다. 여행도 좋고 노는 것도 좋은데 내 몸의 활력을 잃어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