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석고상처럼 굳은 모습으로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다. 숫제 고독을 천성처럼 타고난 것처럼 그 어떤 고독보다 더한 고독을 토해내고 있다. 식판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몇 톨의 밥알과 싸늘하게 식은 국 국물 같은 회한을 뱉어내고 있다. 인생 밑바닥의 얼룩처럼 닦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는지 가슴앓이했던 지난 시간을 비우고 그 빈 가슴에 무언가 채워 넣는 듯했다.
시곗바늘이 권태의 반복 속에 단조로움을 피하지 못하듯 권태 뒤편에 숨겨진 적막감이 그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건물 안과 밖을 구분 짓는 콘크리트 벽, 비록 그 두께가 삼십여 센티 정도에 지나지 않아도 혼자 일어서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 남자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의 여정이 녹록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곳에서는 나이와 성별도 따지지 않는다. 젊었을 때 어떤 일을 했는지 캐묻지 않는다. 상당수 어르신은 거동이 불편하고, 치매 증상이 있어 보인다. 개중에는 오랜 병치레로 자식들이 돌보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분이 있는가 하면, 큰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수시로 하며 세상을 원망하는 칠십 대 후반의 노인처럼 삶의 허기를 메우지 못해 온 분도 있다. 낯선 얼굴이 더러 보이긴 해도 이곳 요양원에 계신 분들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노인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시계추가 동일한 공간에서 변화 없는 움직임을 반복하듯, 점유한 공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몸짓으로 식탁으로 향한다. 그렇게 몇 걸음 하다 허리를 펴고, 그러기를 몇 번, 무게 중심이 맞지 않으면 지팡이에 온몸을 의지한다.
그가 식탁에 다가가 앉자 도우미 중 한 사람이 남자의 목에 앞치마를 걸어주고 자리를 뜬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또 다른 몇몇이 의자에 앉는다. 식탁으로 오지 못하는 분들은 대개 침실에서 식사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도우미들이 일일이 떠먹여 드리기까지 하는데, 거동이 불편한 분 빼면 올 수 있는 분들은 다 온 듯하다.
식사 시간이면 홀 안은 분주해진다. 밥 차가 덜컹거리며 문턱을 넘고, 도우미들이 배식을 돕기 위해 자리한다. 때맞춰 면회 온 가족들은 어른들 목에 앞치마를 걸어주고 준비한 반찬을 놓아드린다. 그런데도 식탁 주변은 활기가 없다. 천장부터 테이블 바닥까지 장막을 친 것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비 온 뒤 칙칙한 기운이 몸에 달라붙듯 국수 가락 같은 침묵만 줄줄 흘러내린다.
마침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태풍이 몰아칠 것을 우려해 비설거지 하라하고 축대 붕괴나 바닷물 넘침을 조심하라는 기상 예보가 흘러나온다. 어느 지방에서는 덩치 큰 나무들이 쓰러졌고 배수로가 막혔으며 산사태 피해가 우려된다고 했다. 남쪽 벽면에 기대놓은 일인용 의자에 앉아 기상 예보를 듣던 그의 부인은 비 피해를 우려하는 아나운서보다 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 검정 바지에 파랑과 황색의 점무늬가 있는 주황색 꽃이 디자인된 블라우스를 걸친 그녀는, 그녀가 입고 있는 블라우스 색의 부조화보다 더 어색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응시하는 남자를 바라본다.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시시포스의 돌’을 굴려야 하는 숙명인가? 거미줄 같은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그리하지 못하는 남자.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자기만의 영법으로 헤엄치고 싶어도 힘에 부치는 남자. 그런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끝내 지켜보지 못하겠는지 그녀는 누런 테 안경을 고쳐 쓰고 잠시 자리를 뜬다.
남자는 부인의 마음과 달리 그의 짧고도 흰 머리카락만큼의 시간조차 다른 것에 할애하지 않는 듯했다. 가마솥의 물이 펄펄 끓어오를 때 올라오는 수증기 같은 열정은 온데간데없다. 오직 숟가락에 담긴 밥 덩어리가 식기에 도로 떨어질까 염려하는 것 말고 아무런 할 일이 없는 듯 식판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남자는 보쌈을 상추에 크게 싸 입안으로 오지게 밀어 넣던 어느 해 여름을 떠올릴 것이고, 식구들과 돼지 껍질에 막걸리 한잔 주고받던 때를 회상하고 있는 듯했다.
나이 들어갈수록 누구든 외로움을 탄다. 남들 눈에는 누릴 것, 소망하는 것 다 이룬 것처럼 보여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목말라한다. 서녘하늘에 몸을 누이는 해처럼 그리운 대상을 멀리한 채 깊은 산 속이나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몸을 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성공과 출세, 부와 명예를 바라지도 않고 그저 건강한 몸으로 가족들과 살 비벼가며 살고 싶어도 그리하지 못해 섬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들도 있다. 광장으로 나가고 싶어도 발짝을 떼어 놓을 수 없는 처지여서 몸부림치는 이도 있다.
이곳 어르신들은 오늘도 성냥갑을 켜켜이 쌓은 듯한 공간에서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는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배설하고 잠자리에 든다. 눈 뜨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바람에 감사함을 전하고, 논과 밭 들판을 활보하던 때를 떠올린다. 지금의 몸 상태보다 더 나빠지지 않으려 애쓰고, 다른 공간으로 옮겨지지 않으려고 기도하며 오후의 시간을 보낸다.
방에는 개키지 않은 이불이 흩어져 있고 설거지통에는 밥공기와 접시와 숟가락이 넘쳐나도 그런 시간 속으로 달려가고 싶어 창문을 연다. 풀, 꽃, 나무를 떠올리고 들판에서 너울대는 허수아비 춤이라도 추고 싶어 바깥 풍경을 내다본다. 감나무에 내려앉은 까치 울음소리 들으며 가족들과 아침을 같이 했던 젊었을 적 그 어느 날의 하루라도 떠올리고 싶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한 줄기 빛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다. 계절이 바뀌려는지 홀 안 깊숙이 파고든다. 안과 밖을 바꾸는 창, 마음의 창을 내고 싶어 하는 노인의 머리 위에도 빛이 한참이나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