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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07. 2023

가을 강

가을 강


     

 

                                                                

  시퍼런 강물을 내려다보며 어린 소년의 고독과 마주한다. 모진 숙명 속에 피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 혼. 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소년의 얼굴이 비친다. 소형 엔진을 얹은 쪽배도 역사 속의 슬픔을 아는지 통 통 통 통 힘겹게 운다. 비통함에 몸서리치며 죽어간 영혼의 울부짖음을 달랜다.

 조금 전 부친의 주검을 앞에 두고 통곡하던 동료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는 조문객이 온 것도 모른 채 오열하고 있었다. 망자의 죽음이 안타까워 울다 지쳐 쓰러지고 복받쳐 오는 한스러움에 땅을 치기도 했다. 애타는 마음 어이할까. 그녀는 우리 일행이 승용차를 놔두고 대형 버스를 임대해 청주에서 영월까지 왔다고 하자, 그 고마움에 참았던 눈물을 훔쳐내며 덥석 손을 잡고는 놔주지 않았었다.   


 어찌 주검이 이리도 다를 수 있으랴. 하늘의 부름을 받고 가는 거라면 어느 주검이든 헛되지 않아야 한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그 죽음 가볍게 해 강물까지 울게 해서는 안 된다.   


 삼 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북쪽은 험준한 준령이 가로막은 청령포. 숲은 큰 소나무들이 즐비해 수려하지만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사람들이 찾아들지 않으면 절간이요,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면 육지 속의 섬이나 다름없다. 지금이야 둔덕이 깎여 나가고 강바닥이 자갈과 모래로 메워져 그 깊이가 덜하지만 600여 년 전 이곳 물속은 깊고도 깊거니와 피비린내가 진동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왕위에 올랐다가 시퍼런 칼날에 저항하지 못한 단종. 그 어린 왕은 1456년 6월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폐위되어 이곳 청령포로 유배된다. 권력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 아버지 문종은 국사를 돌볼 수 없을 만큼 병세가 심해지자 집현전 학자들에게 단종을 잘 보필하라는 고명을 내리고 왕위를 물려주지만, 수양대군은 권력에 눈멀어 어린 조카를 노산군으로 강등하여 영월로 귀양 보낸다.

 한 번 들어오면 다시는 뭍으로 나갈 수 없는 청령포. 17살 소년은 고립감에 무심한 강물만 바라보았을 것이다. 바람이 얼굴을 간질이고 구름이 계곡을 휘돌아간들 그 정취를 마음속에 온전히 담을 수 있었을까. 차라리 풀꽃이라면 벌과 나비라도 불러들여 위로받을 텐데 첩첩산중이라 오가는 이 없어 혼자 보내야 했다. 천 리 길 한양에 두고 온 송 씨를 불러본들 목소리는 육육봉에 부딪쳐 산산 조각나 구름처럼 흩어졌을 것이다.  


 어린 왕은 얼마나 두려웠으면 해가 저물기도 전에 사립문을 닫으라 했겠는가. 맹수의 울부짖음보다 고독이 더 무서웠을 것이다. 푸른 솔이 동산에 우거지고 냇물은 돌에 부딪히며 소란스러워도 벗이 되어주지 않았다. 소년은 섬 아닌 섬에서 강물에 고립된 채 허탈감에 괴로워하고 고독감에 몸부림치며 울부짖어야 했다. 비록 누더기 옷을 걸치고 먹지 못해 배곯더라도 저잣거리의 아이로 태어났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을까.

 

 결국 비운을 타고난 어린 왕은 낙엽이 져가는 10월의 끝자락에 생을 마감한다. 이른 나이에 권좌에 오르지만 권력의 냉혹함에 치를 떨다가 강물에 던져진다. 찰나의 삶을 살지만 천추의 한을 가슴에 안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피 끓는 절규에 강물이 운다. 흘린 눈물이 강을 타고 흐른다.

 장릉에서 내려오는 길에 땀을 식히려고 나무 그늘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몸체가 유난히 구부러진 소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던 걸음 저절로 머문다. 보통 소나무라면 몸통이 올곧고 가지가 옆으로 죽죽 뻗는데 어쩐 일로 이곳 소나무는 가지로 자신의 몸통을 휘감으며 세월을 이고 있는 걸까?


 어린 왕의 죽음을 위로하려고 그때부터 소나무는 가지가 뒤틀어졌는가. 고요히 잠든 영혼에 예를 다하려고 몸을 구부리며 거친 비바람을 막아내 왔는가. 나무 그늘에 있는 게 도저히 송구스러워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    


 사람이나 나무나 눈에 띄면 남아나지 않는다. 곧게 자란 나무가 궁궐이나 절터로 보내지고 집의 대들보가 되듯 왕족의 피를 물려받으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라의 재목이 되어야 한다. 뒤주에 갇혀 세상에 나오지 못한 왕자도 있고 지병으로 권좌를 일찍 내준 임금도 있지만 역사는 사람을 가려 쓰지 않는다.


 강가를 돌아 나오면서도 마음이 찹찹하다. 두 분의 죽음이 비교돼 가슴이 아리다. 세상과 결별할 때만큼은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서 지켜줘야 한다. 어떤 이가 부귀영화를 누리다 가든 한 줌의 모래알처럼 흩어진 삶을 살다 가든 죽음은 다르지 않아야 한다. 애달픈 마음으로 통곡하고 서로 위로해야 떠나가는 영혼이 처량하지 않다. 그냥 버려지는 죽음이라면 서럽다. 죽음 뒤에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청령포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영혼을 위로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관광버스가 수없이 드나들며 애절한 역사와 마주한다. 아득히 멀어져간 시간과 만난다. 술 한 잔 걸치며 소요를 부리던 사람들도 강가에 서면 처연해진다. 떠나간 어린 왕의 슬픈 노래라도 들어보려고 배에 오른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숙부! 숙부! 살려주세요. 권좌도 싫고 재물도 필요 없으니, 제발 목숨만 살려 주세요.’라고 울부짖는 어린 왕의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아 좀체 눈을 붙일 수 없었다.


                            <2009 군포 백일장 장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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