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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09. 2023

경비원은 3개월 파리 목숨

 같이 근무하는 대원이 지하주차장 순찰을 돌고 오더니 쌀 과자 2개와 검은 참깨가 배합된 두유를 건넨다. 순찰을 돌다 청소하는 미화원 여사님을 만났는데, 잠시 지하 공간 쉼터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오는 길에 주더란다.


 요즘 이곳에서 일하는 미화원 분들은 고용승계 문제로 머리가 아프다. 기존 청소업체의 용역기간이 종료되고 5월 1일부로 새로운 업체가 들어온다. 해당 업체에서는 기존에 일하던 미화원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새로운 인력을 투입하거나 일부만 고용 승계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분들은 하루하루가 살엄음판을 걷는 기분일 것이다. 아마 이 분들은 여타 사업장에서와 같이 또다시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칠 것이다.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청소용역업체가 바뀌었으니까.

 며칠 전 나도 청소용역 업체가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는 분리수거장 청소를 하는 미화원의 대장격인 남자분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 얘기로는 남자 청소원들은 대부분 고용 승계가 될 것 같지만 아마도 실내청소를 하는 여자 미화원들 중 몇 분은 퇴출될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처지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대화를 나누는 매 순간 무척 조심스러웠다. 만에 하나 일을 지속하지 못하고 나가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는가. 미화원으로 일하면서 180여만 원 정도 받는다고 했. 한 대가에 비해 보수가 적은데, 그나마도 못 받고 퇴출당하면 당장 생활고에 시달릴 게 불 보듯 뻔하다. 갑작스레 밥줄이 끊기면 그 허전함에 밥이 제대로 넘어가겠는가. 생계곤란으로 절박한 처지에 있는 분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다

 개중에는 나이 들어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무료하게 보내느니 일하면서 활력을 얻고, 한 푼이라도 벌어 손주 먹을거리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에 나왔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 돈 싫다고 하는 사람 몇 있을까. 넉넉하게 사는 집보다 쪼들리고 사는 집이 더 많을 것이다. 애들 학원비에 병원비에 아파트 관리비에 대출 이자까지 갚는 것도 만만치 않거늘 밥줄마저 끊기는 날엔.


돈을 써 봐서 알지만 단돈 10만 원일지라도 20만 원의 가치를 발휘한다. 없는 살림이라면 더 그렇다.


손님상을 차리기 위해 슈퍼에서 돼지고기 삼겹살 몇 근에 상추와 깻잎 등 쌈 채소를 10만 원에 산다고 가정해 보자. 1달 생활비로 200만 원을 쓴다고 할 때 공돈으로 10만 원이 생겼다면 손님상을 차리고도 200만 원은 불변이다. 하지만 고스란히 그 경비를 생활비에서 충당했다면 190만의 계산이 나온다. 10만 원의 위력이 그만큼 대단한데 매달 받아오던 큰돈이 눈앞에서 사라진다면 어찌 견디겠는가.

 퇴직금은 1년 만근을 해야 발생한다. 업체가 바뀌면 꽝이다. 퇴직금은 통상임금과 평균임금을 계산, 비교하여 높은 금액을 택하여 받는 1년을 채우고 싶어도 못 채우는 처지가 되는 미화원분들은 얼마나 애가 탈까.

근로기준법 제2조 정의에 따르면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모든 금품을 말한다. 또한, ‘평균임금’은 이를 산정하여야 할 사유가 발생한 날 이전 3개월 동안에 그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수로 나눈 금액이다.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으로 기본급, 식대, 상여금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미화원이나 경비원은 통상임금이니 평균임금이라는 용어는 의미가 없다. 단기 근로 계약을 맺고 일하는 처지라 식대를 받거나 상여금을 받을 일은 거의 없으니까.

 청소와 미화를 책임지고 일하는 분 대부분이  기존 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한 기간이 4월 말 기준 9개월이라고 했다. 1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에서 3개월이 모자라는 셈이다. 3개월만 더 일하면 한 달 치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데 하루아침에 용역업체가 바뀌는 바람에 고용 승계 되어 일하더라도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영업양도에 의해 근로계약 관계가 포괄적으로 승계된 경우에는 근로자의 종전 근로계약상의 지위도 그대로 승계된다. 임금·근로시간 등 근로조건도 변함없다. 또한, 별도의 특약이 없는 한 근로자가 퇴직하면 양수인도한 회사에서 근무한 기간까지 합산하여 퇴직금을 지급하여야 다. 하지만 그양심적인 용역업체가 몇 될까?

 경비원이나 미화원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다. 나가라면 나가야 되고 일하라 하면 일해야 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을"의 신세다. 밥줄이 끊기면 어디건 재취업하여 그만큼의 돈을 벌어야 하고, 돈 걱정 크게 안 하는 사람일지라도 퇴에 따른 부담감은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2023. 3월 말 경기도 시흥 한 아파트에서는 12명이 일해 왔는데 전원 해고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그곳에서 일하던 경비원들은 일을 안 한 것도 아니고,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유 없이 잘리게 되었다고 불만이 가득했다. 서울 한 아파트에선 나이 든 경비원의 경우 3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어왔다고 했다. 마음에 안 들면 자르기 편하기 때문에 초단기 근로계약을 맺는다고 했다.

 초단기 근로 계약은 전국 어느 사업장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가 아파트 노동자 인권보호 컨설팅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진행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6개월 이하 단기근로계약 비중이 2021년에는 2,326대 단지 조사 결과 48.1%, 2022년 1,611개 단지 조사 결과 49.9%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3개월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하면  쉽게 자를 수 있고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3개월이나 6개월이든 단기 계약을 하는 주된 이유는 경비원에게 돌아갈 연차수당이나 퇴직금을 그들이 착취하겠다는 의도다. 1달 만근을 하면 다음 달 1일에 연차 휴가가 1개 발생하고, 1년 만근을 하고 나면 그다음 날 15개의 연차 휴가가 발생하는데, 쪼개기 계약을 하면 연차유급휴가에 따른 수당도 덜 줄 수 있고, 퇴직금 또한 발생 사유가 없어진다.

 경비용역업체와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경비용역계약을 할 때 경비원들의 연차 수당과 퇴직금은 당연히 계상되었을 것이다. 입주민들이 매달 내는 관리비에도 당연히 용역경비 계약에 관한 비용이 차출되는데, 입주민이나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용역업체의 이런 꼼수를 알고 있을까.

 물론 경비용역업체가 다 그런 건 아니어도 대부분이 그러하다면 아파트 관리비 결산 시점에 경비원들에게 주어야 하는 연차휴가수당과 퇴직금의 실태를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저 임금에 휴가도 내지 못하고, 몸이 아파 병원 검진을 받고 싶도 들은 체 만 체한 사업주도 있다고 한다. 인간다운 삶의 권리는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현실, 경비원이나 미화원근무환경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나 또한, 이 글을 쓸 당시 경비원으로 일한 기간이 5개월을 조금 넘었을 때다. 입사하고 한참이 지난 뒤 근로계약을  때에도 계약기간 정하지 않고 근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2023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재계약 시 1년 기간 일하는 조건으로 근로 계약을 체결하여 다행이다. 하지만 근로자에 대한 복지,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취업규칙이나 애경사 시 유급 휴가가 어찌 되는 것만이라도 알고 싶은데 알려주지도 않았다.  차후 대원들 중 누집안에 애경사가 있을 경우 휴가를 며칠 는지 봐야 궁금증이 풀릴까?  

 경비원은 경비원이기 전에 사람이다. 가장이고 남편이고 아이의 아버지다. 그럼에도 경비의 세상에서는 그런 이름은 인정되지 않는다.

 얼마 전 오죽하면 서울 강남의 모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원이 관리소장과 입주자대표회장의 갑질에 따른 부당한 처우를 못 이겨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택했다.

 경비원 치고 관리자에게 어떤 내용이건 꼬박꼬박 물으면 좋아할 리 없다. 가타부타 옳고 그름을 따지고 드는 사람을 좋게 볼 일 없다. 그러니 재계약되지 않을까 봐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모 대원은 경비로 일한 지 10년이 넘는데, 그분이 한  말이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경비원은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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