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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09. 2023

경비원은 을의 신분일 뿐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주차선을 위반해 그 벌칙으로 스티커를 끊긴 건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차량도 위반하였는데 왜 내 차만 단속했느냐. 형평성이 없다. 어떤 기준을 갖고 단속했느냐 답을 달라는 거였다.

 주차 질서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주차장 관리규정에 따를 뿐이다. 이는 관리사무소에서 입주민들의 의견을 모은 것을 토대로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결정하는 사항이다.

 내가 일하는  현장의 주차관리 규정의 대략은 이러하다. 주차 시설 이용에 따른 등록 대상의 차량 종류와 소유 차량에 대한 신고 조항이 있다. 입주자의 주차 질서와 안전에 대한 준수사항과 이를 위반할 시 벌이 있으며, 허용된 주차공간에 주차하지 않을 시 그 벌칙으로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 단지 내 차량 식별 여부를 표시하는 보람을 붙여야 하고, 주차선이나 소방 전용 차선을 위반해서는 안되며, 장애인 구역에 일반 차량이 주차해서도 아니 된다.

 주차 안내 및 단속을 하는 대원이나 관리소 직원도 이에 따라 입주민들에 대한 차량 통제와 질서 유지를 할 뿐이다. 그 누구도 사견, 즉, 개인의 기준이나 판단으로 차량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위반 사항이 있더라도 사정에 따라 눈감아 줄 수 있어도 형평에 어긋나면 안 된다. 주차 질서 위반 차량에 대해 어느 차는 단속을 하고 어느 차는 봐주는 식의 태도는 있을 수 없다.



주차선을 위반하여 딱지 <스티커>를 끊긴 입주민 처지에서는 형평에 어긋나니, 그 불합리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녹음된 음성파일의 내용에는 이러한 내용도 있다.

 주차선 단속에 관한 근거를 따져 묻는다. 관련 내용, 즉 근거가 되는 규정을 보여 달란다. 덧붙여 경차가 일반 차선에 대거나 그 반대로 경차구역에 일반 차량이 주차하는 데에 대한 단속을 어떻게 해왔느냐며 묻는다. 거기다가 스티커가 끊긴 차주는 질서 위반 차량을 일일이 조사했는지 해당 차량의 번호까지 줄줄이 대고 있다.

 주차 관리를 하든, 시설 관리를 하든 보안대원, 즉 경비원은 을의 처지다. 아무리 일을 잘해봐야 본전이다.

 주민들을 통해 말이 나오거나 관리소 직원이나 경비업체 감독자의 지적이 있으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내동 잘하다 하나만 잘못해도 그동안의 성과는 온 데 간 데 없다. 지금 것만 갖고 따지고 묻는 데가 경비 현장의 현실이다.

 일일 노동자, 한 마디로 경비는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잡부에 불과하다.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는 처지에 놓인 근로자가 경비원이다.

  경비원과 딱지 끊긴 입주민간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화부터 불협화음이 생긴 것 같다. 입주민 입장에서는 차창에 스티커가 붙으면 그것을 떼어내는데 상당한 노고가 필요하다. 접착력이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붙으면 잘 뗘지지 않는다. 신경질이 나고 욕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떼어내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떼어내더라도 덕지덕지 종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그곳에 물을 적셔 종이를 흐물흐물하게 해야 말끔히 제거할 수 있다. 그러니 차주는 왜 내 차만 딱지를 끊었느냐 물어 온 것인데 대원은 원론적인 답변만 하고 있었다.

 보안대원이 자기 생각을 개입시켜 딱지를 끊지 않은 차량에 대해 옹호 발언을 하는 듯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경비원은 ‘유권해석’, ‘현행범’, ‘규약’, ‘불법’이라는 단어까지 끄집어냈다. 입주민은 그게 더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런 말이 입주민의 귀에 들어올까? 관련 규정을 보여준들 소용 있을까?

 예전에 어떤 직업을 가졌었고 어느 지휘나 자리에 있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경비가 똑똑하고 유식해도 현장에 맡게 행동해야 한다. 학자 앞에서는 그에 걸맞게, 노동자 앞에서는 그에 맞는 어조로, 입주민들과도 그 상황에 맞는 말만 꺼내야 하거늘 ‘나 잘 났소.’ 하는 식으로 지식을 뽐낸 들 경비원은 경비원이다. 신분상승은 있을 수가 없다.

 개인 간 모임이나 친목 도모를 위해 정기적으로 만날 때에는 필요에 따라 회칙을 정할 수 있다. 회사 설립 및 운영에 필요한 정관이 있고, 어떤 집단이나 단체 상호 간에는 서로 약속한 규약이 있다. 알다시피 규정은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지는 내부 규범이다. 일반 국민의 권리나 의무와는 관계가 없고 내부 단속에만 해당하는 약속이며 규율이다. 그렇듯 차량 질서 통제 관리에 따른 주차장 관리규정도 해당 아파트에만 적용된다. 모든 아파트에 적용할 수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아파트마다 사정이 있고 단지 특성이 있어 다르게 규정을 마련해도 할 말이 없다. 세대 수가 적은 아파트는 그런 규정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입주민과 경비원은 그 판단과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서로 이해했어야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개선할 사항이 있으면 개선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이를 수용하면서 논쟁을 피했어야 했다.


경비원은 아무리 잘났어도 을의 신분이다. 한 마디로 루저(loser).

 루저라는 단어는 몇 년 전부터 갑작스레 부쩍 유행하던 말로 국어사전에도 올라와 있다. 말이나 행동, 외모가 볼품없고 능력과 재력도 부족하여 어디를 가건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경비원은 많이 배워도, 돈이나 능력이 많아도 언제나 루저다. 비원이든, 다른 곳에서 일을 다툼의 소지가 있으면 상대방의 말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한다


대화의 기술, 다툼을 피해 가는 방법의 첫 번째는 경청이다.


 사람에게 하나의 입과 두 개의 귀가 있는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가르침 아니겠는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일단 참아야 한다. 상대방의 얘기를 우선 들어야 한다. 상대방이 잘못이 있건 없건 그가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 때까지 들어야 한다. 그 시간 길지 않다. 짧게는 2-3분, 길어야 5분 정도일  것이다. 상대방 입장에서도 자기가 하는 말을 들어주는데 싫어할 사람 없을 것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다 듣고 나서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요지를 파악하는 것도 논쟁을 피해 가는 방법 중의 하나다.

     

 불만을 갖고 전화를 걸었는데 경비원은 자기편에 있는 사람처럼 호응하며 대화를 받아주면 그에게 화를 낼 수가 없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불만을 늘어놓고 경비원에게 한마디 욕설이라도 던지고 싶어 전화를 했건만 그가 고분고분한 태도로 응대하면 화를 내다가도 돌아설 것이다.


입주민의 얘기를 듣고 전화를 건 요지까지 파악했으면 그다음엔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하여야 한다.


주차장 관리규정에 따라 단속해야 하고, 어쩔 수 없어 스티커를 붙였다고. 앞으로는 주변 다른 차량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위반 여부를 살펴 단속하겠다고.  

 그렇게  대화가 이어졌다면 거기서 모든 논쟁과 분쟁은 끝이 났을 것이다. 부족한 점은 앞으로 개선하고 근무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슨 말이 필요할까. 불만을 표시하던 입주민도 앞으로는 정해진 곳에만 안전주차 하겠다고 하면서 물러서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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