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처음 배우냐고? 누구를 가르치냐고? 배우는 것도 아니고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이 나이에 그걸 배울 리 없고, 그 누구를 가르칠 자신도 없다.
내게 손주가 둘 있는데 그 녀석들을 볼 때마다 영어 첫걸음이라도 떼어주고 싶은 마음 있어도 서로 떨어져 사는 처지라 그러지도 못한다.
요즈음 유튜브 방송 노래교실을 통해 노래를 배우고 있다. 하나는 이명주 가수의 <보고 싶어요>와 문희옥 가수의 <성은 김이요>다. 두 곡 모두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고 못 잊어하고 있다.
음치는 아니지만 가슴에 젖어드는 가요 한 곡이라도 누군가에 들려주고 싶어 틈 나는 대로 흥얼거리고 있다. 신이 나는 노래도 좋지만 애절한 노래를 부르면 회원들이 "와 대단하다. 그런 노래까지 소화할 줄 알아"라고 하며 손뼉을 칠 것 같아 그런 기대감으로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데, 그 마저도 부를 수 없게 훼방 놓고 있으니 이를 어쩐담.
마음이 편해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지. 개구쟁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말썽을 부리지는 않는지 전전긍긍하는 엄마 같은 심정이요, 시험을 잘 치를까, 면접 때 묻는 말에 대답을 못할까 가슴 졸이는 연인처럼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모 직원은 요령을 부리다 동료들 눈에 까지 나 스스로 옷을 벗고 나갔다. 또 누구는 일이 고된지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나자빠졌다. 그 후임으로 온 사람은 성실하고 체력도 그만하면 됐다 했거늘, 혹여 적응하지 못하고 잘리면 그나마 받던 실업급여마저 받지 못할까 봐 사직서를 던졌다.
그런 일들이 채 한 달이 되지 않는 20일 동안에 벌어졌다. 사건이면 사건이요, 사고면 사고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이직률이 높은 직장의 일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현장 같아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그러니 이런 노래가 저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아린 마음으로 가슴을 쥐어박으며 노래한다.
A, B가 가고 C, D가 온다 해도~~
A B C D E F G ~
A, B가 간다 해도 C나 D는 왜 떠나나~~
A B C D E F G ~
기존에 근무하던 A가 그만두고 나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간다. 후임으로 B가 들어왔으나 채 10일을 견디지 못했다. 며칠 뒤 이어 들어온 C마저 근무 이틀째 되던 날, 이런저런 이유를 댄다. 밤샘 근무를 갑작스레 하다 보니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신체리듬이 깨져 버티지 못하겠다고.
그렇게 C가 오자마자 사직서를 던지는 바람에 후임을 채울 겨를이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기존 직원 D가 그 자리를 메웠지만, 공교롭게 D마저 말실수를 크게 한 여파로 지금 자리마저 위태위태하다. 더군다나 갑의 신분인 직원을 건드렸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 같다.
바늘방석에 앉아 임을 그리는 마음으로 시를 짓고 있는 나날이다. 마음 주고 싶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문희옥이 노래한 <평행선>에도 서로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어 제 갈길을 간다는 가사가 나온다. 나도 나밖에 모르고, 너도 너밖에 몰라 평행선을 걷고 있다고. 서로 사랑하고 싶어도, 서로 바라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평행선을 가고 있다고.
어찌 내 주변에서 사람이 왔다가 자꾸만 떠나가는가. 왔다가 가고 또 왔다가 또 가는가. 정 붙일 만하면 떠나고, 정 주자마자 또 이별인가. 너는 너밖에 모른다 쳐도 나는 그러지 않는데. 다가가고 싶은데 내 마음도 모르고 자꾸만.
이별에는 약속도 없다. 공식도 없다. 떠나면 그만이다. 미련 없이 문 박차고 나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이의 가슴은 무너진다. 허전한 마음 진정하지 못해 한동안 들썩여야 한다. 아쉬운 마음 가라앉히려 해도 뿅 망치를 맞고 금세 튀어 오르는 오뚝이처럼 슬픔이 슴벅슴벅 올라와 가슴을 치게 한다.
D가 점심을 먹지 못한다. 같이 한술 뜨자 해도 속이 불편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밥 숟가락을 드는 대신 약국으로 달려간다. 신경성 소화불량 처방 약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거센 풍파 뒤에 고요가 찾아온다 하거늘 D의 속도 진정이 됐으면 싶다.
물 한 모금 따라 마시고 잠시 안정을 취한 D가 근무를 나간다. 늘 날이 시원하다 하필이면 땡볕이 오지게 내려 쬐는 시간, 그것도 지하 공간이 아닌 지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