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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23. 2023

길에서 길을 묻다

                                                           

  미경이네는 지독한 술고래 남편을 둔 덕분에 오래전에 개터 마을로 쫓겨났다. 화분 네도 살던 집에서 나와 신작로 근처에 덩그렇게 터를 잡았다. 광호도 동네를 떠나버렸다. 결국 매봉재 아래에는 두 집만 남았다.

 오래전부터 우리 집과 붙어 있는 부잣집이었던 근이네 터에도 서울에서 살던 중년 내외가 내려다 쓰러져가는 집을 헐어내고 조립식 건물을 올렸다. 육성 녹음을 위한 테이프 생산을 하는 가내수공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보다도 그는 회색 콘크리트의 거친 질감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안도하는 눈치였다. 흙냄새가 그리워 이사하기 전에도 동네를 미리 다녀갔다고 했다.

  광호가 살던 집은 초라했지만 외떨어져 사람이 들지 않았다. 봄가을을 넘기면서 벽면 곳곳이 떨어져 나가고 비바람에 지붕까지 내려앉았다. 보다 못 한 땅 주인은 흉물 같은 집을 헐어내고 거기에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광호네 집과 길 하나를 두고 살던 권 씨는 이때다 싶어 광호 네로 통하던 길에 흙을 돋워 마당으로 쓰고는 그것도 모자라 황토방을 붙여 짓고 그 옆에는 컨테이너까지 갖다 놓았다. 결국 복숭아를 심은 밭은 농토 한가운데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길이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 그 길은 농사짓는 사람들이 다녔고 철부지 아이들토끼몰이하고 노루를 쫓으려 오르내리던 길목이었다. 정월 대보름에는 그 길을 통해 매봉재에 올랐고 거기 너른 평지에서 작은 깡통에 나뭇가지를 꺾어 넣고 불을 붙여 휙휙 어깨 위로 돌려가며  액(厄)을 몰아내는 쥐불놀이를 하기도 했다.

  자초지종이야 어떻든 답답한 건 그 밭을 부쳐 먹는 박 씨였다. 길이 없어졌으니 당장 복숭아를 심은 밭에 거름이며 비료를 내는 게 문제였다. 나중에 복숭아를 따 내는 것도 골칫거리였다. 그렇다고 먼 길에서 지고 이어 날라 가며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한다 해도 노동력이 많이 드는 데다 남들 보기에도 꼴이 우스워 동네 이장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세상이 변해가듯 하루가 다르게 동네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0여 리 조금 떨어진 곳에 고속도로 나들목이 생기고 공장 들어서고 빈집만 나면 외지 사람들이 용하게도 냄새를 맡다. 그러다 보니 얼굴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곳에서 학교에 다녔고 농토거리가 있어 들락거리지만 외지에서 온 사람들과 부딪칠 때마다 내가 타인이 되고 나그네가 주인이 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날이 갈수록 인심마저 흉해 그냥 도와주면 될 일도 품값을 꼬박꼬박 받다. 과수원 물을 몰래 퍼 쓰다 이웃끼리 다투고, 편을 갈라 일을 거들어주지 않는 집도 생겨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몰래 전셋돈을 빼 나가지 않나, 오랫동안 부쳐 먹던 땅을 말 한마디 안 하고 팔아먹어 당숙과 조카가 원수지간이 되기도 한다.

  말하면 뭐 하랴. 마을 뒤편엔 선산(先山)이 있는데 산소 가는 길까지 없애가며 공사가 한창이다. 자재 창고를 짓고 철 구조물 사업을 하려는 모양이다. 하도 답답해 길을 물으니 창고가 지어지고 나면 그 경계(境界) 비탈면에 철재 계단을 대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공간은 길이 되지 않을 성싶다. 다니라 해도 오히려 작업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해 다니지 못할 것 같다.  

  뒷길은 못된 짓을 한 자들이 들락거리는 길이요,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들이 갖은 천대를 받으며 숨어 다니는 길이다. 길은 끈이 되어 준다. 합(合)의 장소이며 망(望)의 통로다. 연(緣)이 되어 울고 웃게 한다. 그래서 나 있는 길은 어지간하면 없애거나 막지 않는다. 가겠다면 없는 길도 내주고 좁다고 하면 넓혀 주는 게 도리이고 관습이다.  

  비만 오면 하도 질어 ‘진당리’라 불리던 동네. 한 발짝 떼어 놓기 어려울 정도로 진흙이 신발창을 타고 올라오면 어머니의 부지깽이가 수시로 춤을 춰댔 동네. 담 너머로 떡과 음식을 나눠 먹고, 어우리로 모를 심고 품앗이 자식들을 키다. 반벙어리손놀림까지 어눌던 광호엄니도 사람들과 어울려 밭을 매고 고추를 심고 참깨를 털었다.  

  어렸을 적 수수깡을 엮어 몸에 걸치고 집집을 돌며 풍년을 기원하던 ‘거북놀이’의 기억이 새롭다. 언제였던가. 어느 해 겨울KBS 방송국에서 우리 집이 고풍스럽고 고전적인 맛이 난다 하여 이틀간이나 고향의 정겨움을 담아가기도 했. 그렇듯 속이 헛헛하면 그곳으로 달려가 비어 가는 가슴을 달래곤 했는.

  길에서 길을 묻는다. 길이 되어 묻는다. 서울에서 내려온 중년 남자의 말대로 고샅 아스팔트 포장을 걷어내면 마음의 밭이 생겨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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