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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Oct 19. 2023

8월, 그해 여름 어느 휴가지에서 생긴 일

     

소매물도 등대섬을 바라보며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이 열리는 섬이 있다.


 물이 들고 남에 따라 하나가 되었다가 떨어져 두 개로 나눠지기도 하는 섬.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틋한 마음 이어 가는 견우와 직녀처럼 섬은 푸른 파도를 벗 삼아 둘이 되었다가 하나가 된다.


 섬, 섬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 설렌다. 선물 포장지를 뜯을 때처럼 기분이 들뜬다. 특히나 뙤약볕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이면 바다에 대한 가슴앓이는 심해진다.

 소매물도, 물때가 되면 본섬과 등대섬을 사이에 두고 몽돌이 깔린 바닷길이 열린다. 몽돌기암절벽이 수놓은, 그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한 편의 드라마처럼 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와 통영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 30분경. 더위를 피해 내려왔건만 이곳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양산을 받쳐 들고 가는 사람에,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는 어린이에, 모자를 나붓거리며 손부채질을 하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소문대로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여행객들이 어찌나 많은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다.


 아뿔싸!!! 기대감이 컸는데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배가 소매물도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전날 파도가 휘몰아쳐 부두의 정박 시설이 부서져 배가 섬에 접안할 수 없다.


 물때에 맞춰 휴가를 내고 사전 예매까지 했건만….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안내자의 목소리는 마치 저승사자의 목소리 같다. 섬을 그리워하던 내게,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시 한 수 지어보려는 여름밤의 낭만마저 빼앗으려 하는가.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 홀로 떠 있는 돛단배 같은 심정이랄까. 잠시 후, 정 소매물도에 가겠다면 대매물도에 간 후 그곳에서 10여 분간 배를 타고 연결해 가라는 안내 방송이 이어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여행을 감행할 정도로 심장이 강하진 않다. 잘못하단 우리 가족 모두 물고기 밥이 될지도 모르는데. 더군다나 큰 배도 아니고 섬에 사는 어민들고기 잡을 때 쓰는 소형 어선을 이용하라고. 어처구니가 없.  나는 물론, 아내 아들마저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불안한 마음에 오금이 저리고 그 공포감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전날도 태풍 못지않은 비바람이 몰아쳤다고 하는데 고기잡이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라고. 목숨이 두 개인가. 바람이 몰아치는 소형어선에 가족몸을 맡길 수 는 일이다.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딴 곳으로 여행지를 틀까?


한참을 그렇게 그곳에서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매물도행 여객선은 있어도 그곳에서  소매물도까지 작은  배를 이용해 들어가야 할 것이라면 크나큰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객선 터미널을 잠시 기웃거렸다. 대매물도로 들어가는  배표를 사는 사람들이 있나 해서. 군중심리가 발동한다고 한 두 명이 배표를 끊자 그 수가 점점 늘어만 갔다. 여행객들 중에 많은 수가 대물도행 배표를 구입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같이 가 보자고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아내와 아들도 내 뜻을 따라주었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목가적인 풍경.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이 잠시 어수선했던 마음을 위로하는 듯하다. 같이 길을 나선 여행객들의 손을 잡아주고 불안에 젖은 눈을 씻어준다.

아니나 다를까. 대물도에 닿자마자 여객선은 여행객들을 떼어놓고 무작정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대매물도의 모든 정물이 쓸쓸하기 짝이 없다. 한쪽에서는 배를 찾느라 아우성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손님을 찾느라 떠들썩하다. 그나마 고기잡이배마저 탈 수 없는 여행객들은 발만 동동 구른다. 손님들을 태우러 나온 고기잡이배 선주들, 이때만큼 기세등등한 적이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 펜션이나 민박의 규모에 따라 타는 순서가 정해진다. 적지 않은 숙박비를 주고 펜션을 얻은 우리 배의 선장은 이런 상황을 알고 있기라도 한듯  먼저 나와  있었다. 정말이지 배가 작아 고기와 그물이 실린 운전석 뒷편에 우리 가족 세 명이 간신히 앉을 정도로 배가 작았다. 그럼에도 배에 먼저 오르는 행운(?)을 얻었다는 희열감에 그동안의 공포감이나 불안감도 잊은 채 희희낙락하는 아들!! 그새의 두려움은 찾을 수 없고 먼저 배에 올랐다고 좋아하다니. 나나 아들이나 속물근성 버리지 못하는가. 조금 전까지 파도에 휩쓸리면 어찌 하나 걱정 하는 마음 뒤로 하고 고기잡이 배에 오른다. 펜션이나 민박집주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듯, 말없이 어선에 오른다.

  넘실대는 파도에 배는 기우뚱거리고 통통통통 엔진소리마저 요란하다.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까 또 다른 두려움이 몰려온다. 검푸른 바닷물이 배 안까지 튕길 때는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구명조끼를 입었어도 긴장감은 여전하다. 거울을 보지 않아 그렇지, 내 표정도 말이 아닐 듯싶다. 아내뿐만 아니라 아들의 얼굴빛도 노랗다 못해 하얬다.

  “얼굴 좀 펴라. 아들.”

긴장감을 풀어주려 농담을 건네도 아들은 되레 양손을 움켜쥔다. 넘실대는 바닷물조차 두려운 듯 질끈 눈을 감기도 한다. 저 건너 낚시질하는 사람들의 여유 있는 모습과 사뭇 대비된다.

  “우리 고깃배 사장님! 배 좀 살살 몰고 가소.”

내가 그리 소리쳐도 엔진 소리에 눌려 그 외침이 들리지 않나 보다. 어쩔 수 없어 나는, 이 목숨 부지하게 해 주소서. 배를 좀 살살 몰아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매물도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4시 15분경.  긴장감에서 벗어나 휴~~ 하고 길게 숨을 내뱉는다. 펜션에 짐을 풀고 잠시나마 섬 주변을 내려다본다. 시야가 확 트인 방, 파랗다 못해 검디검게 보이는 바닷물, 은갈치처럼 햇살에서 넘실대는 파도, 바다가 그려내는 풍경이 한낯의 더위를 씻어낸다. 칙칙했던 그간의 무거움을 말갛게 닦아낸다.


선착장에 내려 등대섬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 오르막 마을길을 오른다.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남매탑을 지나 갖은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꽃길을 걷는다. 고갯마루에 닿자, 푸르디푸른, 눈을 호사시키는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녹음방초와 어울려 이국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갖가지 나무가 어울햇볕 한 점 들지 않을 것 같은 동굴, 연인들끼리 가는 경우라면 잠시 뽀뽀해도 들키지 않을 정도로 무드 있는 공간, 아내 손을 살며시 잡는다.                                                             

  “외국에 가지 않아도 돼요. 정말 멋지잖아요.”라며 바닷물이 속삭이는 사이, 해안 야트막한 둔덕엔 곰솔이 묵묵하게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해풍에 견디는 것은 아픔이지만, 그 아픔을 참고 이겨내면 아름다운 날이 있다며 내게 말을 걸어온다. 가는 길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참고 살아가다 보면 얻는 것도 있을 거라며 내 손을 잡는다.  

  바닷물 속에 잠긴 산호초를 캐러 가듯 등대섬의 보물을 만나러 데크 계단을 내려간다. 신비한 비밀을 간직한,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모세의 기적을 본다. 바닷길 열리는 길이가 100m가 되지 않아도 놓칠 수 없는 신비의 길, 기암괴석이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서풋서풋 걷는다. 몽돌이 발에 밟히다. 오랜 세월 닳고 닳아 동글동글해진 몽돌! 너울 파도에 몸을 내주며 견뎌온 시간을 헤아릴 수 있을까. 나도 몽돌을 닮고 싶다. 몽돌이 되고 싶다.                                                             

  기암괴석이 즐비한 등대섬을 품을 수 있는 여행객은 행복하다. 계단이 가파르지만 쉼 없이 올라간다.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인가. 기암절벽에 등배 그림자가 비친다. 그림자는 십자가요, 부처님의 손짓이다. 그림자에 내 몸을 맡긴다.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힘없는 자, 내게 오라. 세상살이가 힘들고, 가시밭길이 그렇게 많더냐. 그럴 때마다 내게 오라” 손짓하는 것 같다. 언제든지 오게나, 다 받아 주겠다며 속삭이는 안도의 그림자. “오늘 하루 감사했습니다. 여행할 시간을 가졌고 휴식을 얻었습니다. 가족의 웃음을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기도문을 올린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 시간의 얼룩을 바닷물에 헹궈낸다. 한 발짝 더 가려고 품었던 욕심과 근심을 내려놓고 석양을 바라본다.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먼저 달려 정상에 오르려 하는 마음 그 누구에게나 있으나, 어깨를 내주고, 허리 굽혀 풀린 신발 끈을 매 줘야 한다. 오늘 하루 먼 길 달려왔으니 별도 보고 달도 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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