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가 일부러 나를 안 키우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막상 현장에서 부딪히면 마음이 잘 안 따라간다. “이걸 왜 못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정작 방법은 말해주지 않는 사수. “눈치껏 배워라” 한 마디 던지고 돌아서 버릴 때, 신입이나 인턴이 느끼는 감정은 꽤 단순하다.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나 보다.’
‘혹시 나를 견제하는 건가.’
답이 없으니 혼자서 별별 가설을 다 세워 본다. 그래서 더 서럽다. 그래도 가끔은, 생각의 방향을 한 번쯤만 바꿔 볼 만하다. 사수가 입을 다무는 이유가 항상 “주기 싫어서”만은 아닐 수 있다는 쪽으로.
오래 같은 일을 하다 보면, 능력이 머릿속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쪽으로 옮겨 간다. 눈으로는 이미 다음 단계까지 보고 있는데, 입은 그걸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 자기가 어떻게 일하는지 차분히 언어로 정리해 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 많은 사수가 이 부류에 가깝다. 전문가가 되면 초보자가 어디에서 막히는지 떠올리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전문가의 눈가림’이라고 부른다.
사수 머릿속에서는 A 다음에 B, C, D, E가 지나가고 Z까지 가는 과정이 거의 동시에 벌어진다. 그래서 후배에게 일을 시킬 때도 A만 말해놓고, 바로 Z로 점프해 버린다. 가운데 단계들은 이미 몸에 익어서, 굳이 말로 꺼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잘 못 한다. 이걸 후배 입장에서는 “무시당했다”라고 느끼기 쉽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닐 때도 있다. 단지 생각 속도가 너무 빨라서, 지금 막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의 속도를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에 더 가깝다. 한때는 본인도 서툴렀을 텐데, 그 시절이 희미해진 채로 “이 정도는 다 알겠지”라고 착각하는 상태.
사수의 불친절함 안에는 개인의 성격이나 악의만 있는 게 아니다. 오래 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빠지기 쉬운 인지적 한계가 섞여 있다. 사수가 가진 힘은 매뉴얼에 적힌 지식보다, 몸에 밴 감각에 가깝다. 실무를 해보면, 문서로 정리된 규정이나 절차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수는 서류를 한 번 훑어보고도 “이건 뭔가 설득력이 부족한데, 다시 보자”라고 말한다.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도 명확한 설명이 잘 안 나온다. 자전거 타는 법을 책으로만 배울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몸으로 익힌 기술은 말보다 먼저 움직인다.
수년 동안 겪어 온 실수와 성공이 머릿속 어딘가에 패턴으로 쌓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패턴이 먼저 반응한다. 사수가 “이럴 땐 그냥 김 대리한테 전화를 먼저 넣는 게 낫겠다”라고 말할 때, 후배는 이렇게 생각한다. “규정상 이메일이 먼저 아닌가?” 사수는 이미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분위기나 상대의 스타일, 팀의 여유 같은 요소를 한꺼번에 떠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결론이 ‘전화 한 통’ 일뿐이다.
문제는, 이 과정을 사수가 논리적인 언어로 다시 조립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에 심리적인 요소도 조금 섞인다. 막상 자기 노하우를 하나씩 말로 풀어내려고 하면, 생각보다 빈틈이 많아 보일까 봐 불안해진다.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나도 딱 떨어지게는 설명을 못하네?” 이 느낌이 드는 순간, 그동안 쌓아 온 전문성이 한꺼번에 흔들릴까 걱정이 된다. 후배가 영리하고 조직이 평가에 민감할수록, 허술한 부분이 드러나는 게 더 두렵다. 그래서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애매하니까, 옆에서 보면서 배워요”라는 말 뒤에 숨는 편이 심리적으로는 더 안전하다.
이 말에는 ‘가르칠 의지가 없다’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가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바라보면, “사수가 일부러 내 성장을 막는다”는 해석과는 조금 거리를 둘 수 있다. “이 사람도 자기가 아는 걸 어떻게 꺼낼지 모르는, 불안한 전문가일 수 있겠구나”라는 시선이 하나 더 생긴다. 원망은 조금 줄고, 상황을 관찰할 틈이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말로 설명 못한다니까 어쩔 수 없지”에서 멈출 필요는 없다.
말로 꺼내기 어려운 지식은, 같이 부딪히면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멘토링을 정식으로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사수가 직접 처리하는 업무 옆자리에 잠깐이라도 붙어서, 처음에는 과정을 지켜보고, 그다음에는 내가 해보고, 그 옆에서 사수가 “방금 이 부분이 좀 애매했다”라고 짚어 주는 방식. 이런 식으로 같이 일하다 보면, 후배는 사수의 손놀림과 판단 기준을 눈으로 익힐 수 있다. 사수 역시 “나는 항상 이 타이밍에 한 번 더 확인 질문을 던졌구나” 같은, 스스로도 몰랐던 습관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된다.
노하우는 어느 날 문서 한 장으로 통째로 내려오는 비밀 레시피가 아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조금씩 언어를 얻고 이름을 달게 되는 쪽에 가깝다. 사수의 침묵이 늘 정답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침묵이 악의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고, 그 빈틈을 함께 메워 보려고 손을 한 번 뻗어 보는 태도. 결국 그 태도가, 사수와 후배가 서로를 덜 상처 주면서 같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