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엔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다.
내가 나를 지키자.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검색창에 ‘퇴사’를 쳐 본 사람, 아마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이미 피곤하고, 회사 건물 앞에 서면 가볍게 숨이 막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가슴 안쪽이 아주 조금 내려앉는 느낌. 누가 나를 혼낸 것도 아닌데, 몸 전체가 회사에 붙들려 있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대개 거대한 해결책이다.

이직, 진로 변경, 다른 회사.

“여기 아니면 안 돼?”라는 질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른다.


분명 언젠가는 방향을 통째로 틀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다만, 우리가 보내는 대부분의 날은 그런 결단의 날이 아니다. 그냥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날이 훨씬 많다. 나도 한동안은 “회사가 바뀌어야 내 삶이 바뀐다”라고 생각했다. 조직 문화, 상사의 성격, 급여 수준. 손댈 수 없는 것들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버티는 동안 조금씩 깨달았다.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회사 전체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쓰는 방식이라는 것을.


출근 시간에 쫓기던 시기를 지나, 나는 먼저 루틴을 조금 건드려 보기로 했다. 관두는 대신, 일단 버티는 시간을 바꾸는 쪽을 선택했다. 거창한 건 아니었다. 그저 출근 전 10분, 일하는 중간의 몇 줄 메모, 밥을 먹는 방식, 퇴근 시간에 대한 태도 같은 것들. 그런데 그 사소한 것들이 출근길에 뛰던 심장 박동을 아주 조금 늦춰주었다.


아래에 적는 다섯 가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붙잡고 있는 작은 장치들이다.

오늘부터라도 한두 개는 바로 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먼저, 아침을 조금 다르게 쓴다.


출근 시간을 10분, 여유가 되면 20분만 앞당긴다. 듣기만 해도 피곤한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남들보다 더 일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먼저 나를 챙기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회사에 조금 일찍 도착해도 당장 컴퓨터를 켤 필요는 없다. 커피 한 잔을 책상 한쪽에 내려놓고 가방에서 얇은 노트를 꺼낸다. 그리고 오늘 반드시 끝내야 하는 일, 자꾸 미루지만 더는 밀기 어려운 일, 솔직히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적는다.


‘12시까지 송달 확인’, ‘3시 전 보고 메일 초안’ 정도의 짧은 문장만으로도 충분하다. 중요한 건 표현이 아니라 순서다. 아침 첫 순간에 ‘회사’가 아니라 ‘오늘의 나’가 주도권을 잡는 것.


이렇게 노트를 한 번 펼쳐두면, 오전 내내 들어오는 요청과 예고 없는 전화에 휘둘리다가도 다시 돌아올 기준점이 생긴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흐르든, 최소한 내가 정한 세 가지 줄은 붙잡고 갈 수 있다.


두 번째로, 종이에 자주 적는다.
우리가 쓰는 도구는 대부분 메신저와 앱으로 옮겨갔지만, 마음이 복잡해질수록 종이가 더 잘 받아주는 순간이 있다. 업무 아이디어, 할 일, 억울했던 말, 불안한 마음을 전부 노트로 보낸다. “이런 것까지 적어야 하나?” 싶은 사소한 마음까지 괜찮다. 상사의 말투가 신경 쓰였던 순간, 동료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던 장면, 스스로에게 실망한 순간까지 다.


그렇게 쓰다 보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이 줄을 맞추기 시작한다. 요즘 회사에서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어떤 사람 옆에서 특히 기운이 빠지는지, 무슨 일을 할 때는 이상하게 덜 힘든지가 조금 더 또렷해진다. 특히 화가 날 때, 억울할 때, 바로 달려가 따지고 싶을 때 노트가 제 역할을 한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말을 꺼내기 전에 일단 몇 줄 적어본다. 한숨을 섞어 몇 줄을 쓰고 나면, 그중 절반쯤은 굳이 말로 옮길 필요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 말은 한 번 나가면 돌아오지 않지만, 종이에 적힌 문장은 찢어서 버릴 수도 있고, 덮어둘 수도 있고, 나중에 다시 고쳐 쓸 수도 있다.


세 번째로, 말을 한 박자 늦춘다.
여기서 말 줄이기는 입을 굳게 다물고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할 가능성이 큰 말만 잠깐 미뤄보자는 제안에 가깝다. 회의실, 복도, 점심 자리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말을 쏟아낸다. 그중에는 해도 되는 말도 있고, 안 했으면 더 좋았을 말도 있다. “굳이 저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하고 밤에 떠올랐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대개 감정이 생각보다 먼저 나갔을 때였을 것이다. 그런 말이 입술까지 올라왔을 때, 3초만 멈춰본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말을, 지금, 여기에서 꼭 해야 하나?”


일단은 노트에 적어두고, 다음 날 다시 읽어본다.

하루가 지나 다시 읽어보면, 어제는 칼처럼 날카롭게 느껴지던 문장이 오늘은 괜히 유치하고 과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감정의 농도가 옅어졌다는 뜻이다. 말을 줄인다는 건 결국 상대를 위한 인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을 지키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네 번째로, 점심시간을 대충 넘기지 않는다.
바쁠수록 점심이 제일 먼저 희생된다. 회의가 겹치고, 마감이 밀려오면 “오늘은 그냥 편의점에서 때워야지” 하는 생각이 쉽게 올라온다. 그러다 보면 하루 세끼 중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은 사실상 사라진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 혼자 먹고 싶어서, 그냥 귀찮아서 대충 해결하는 날이 많다. 그럴수록 점심 한 끼만은 조금 더 신경 써보려 한다. 꼭 누군가와 함께일 필요도 없다. 따뜻한 국 한 그릇과 밥 한 공기를, 급하게 밀어 넣지 말고 천천히 씹어 넘긴다. 휴대폰 화면을 잠깐 내려놓고, 눈앞의 음식에만 집중해 본다. 창가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옮기다 보면, 오전에 있었던 일들이 조금 다른 톤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점심을 제대로 먹는다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문제가 아니다. 오후의 나에게 연료를 채우는 일이다. 배가 고프면 사소한 말에 더 예민해지고, 집중력도 쉽게 바닥난다. 반대로 한 번 제대로 먹어두면, 오후의 나를 대할 때 마음에 작은 여유가 생긴다. “그래도 밥은 제대로 먹었다”는 감각이 하루를 버티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퇴근 시간에 대한 기준을 세운다.
“무조건 칼퇴하라”는 말은 듣기에는 시원하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조언처럼 들린다. 회사 분위기마다, 맡은 일의 성격마다 야근이 불가피한 날은 분명 있다. 그래서 ‘완벽한 칼퇴’ 대신 ‘가능한 한 제때 일어나기’를 기준으로 삼는다. 아침에 오늘 꼭 끝낼 일들을 적어두면, 저녁 무렵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이유도 조금은 분명해진다. 회의가 길어져 퇴근이 밀려도, 의미 없이 자리를 지키는 시간은 줄일 수 있다.


조직의 흐름을 완전히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내 삶의 흐름을 너무 망가뜨리지 않는 선이 있다. 모두가 당연하게 남아 있는 시간이 정말 필요한 시간인지, 아니면 관성에 끌려가는 시간인지 가끔은 점검해 본다. 그리고 일어나기로 마음먹은 시각이 되면, 회사 메신저 대신 나 자신에게 알림을 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 들으며 편의점에서 작은 디저트를 하나 집어 든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오늘도 꽤 열심히 버텼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말을 들을 자격만큼은 내가 제일 먼저 가진다.


직장에는 나를 대신해서 일해줄 사람은 언젠가 또 생긴다. 하지만 나를 대신해서 쉬어줄 사람은 없다. 누군가 “오늘은 좀 쉬어도 된다”라고 허락해주지 않아도, 내 몫의 휴식만큼은 내가 챙겨야 한다. 출근 시간을 조금 바꾸고, 노트를 열어보고, 말을 한 박자 늦추고, 점심을 제대로 씹어 먹고, 퇴근 이후의 시간을 다시 내 손에 쥐어보는 일. 이 다섯 가지는 회사도, 상사도, 조직 문화도 바뀌지 않아도 오늘 당장 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직장생활이 힘들어질수록 우리는 자꾸 “회사 밖의 답”만 찾게 된다. 물론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는 선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전까지는, 회사 안에서 아주 작은 루틴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숨 쉴 틈이 조금은 생긴다.


퇴사 대신, 오늘 하루를 조금 다르게 써본다.

그렇게 버틴 날들이 쌓이면, 언젠가 진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왔을 때도 덜 급하게,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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