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형·언니 말고, 예측 가능한 어른이 필요하다

감정보다 기준이 보이는 피드백의 언어

“요즘 애들은 정이 없어.”


술자리를 잡아보면 이 말이 꼭 나온다. 겨우 시간 맞춰서 모였는데, 막상 자리에 앉으면 반응이 심드렁하다. 한두 잔 돌고 나면 슬쩍 핸드폰을 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마자 먼저 일어나겠다고 말한다. 공들여 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 쪽만 허공에 남은 느낌이다.


그래서 어떤 선배들은 신조어 영상을 찾아본다. 후배들 말투를 따라 해 보고, “나도 너희 편이야”라는 표시를 해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한다. 그런데 정작 돌아오는 건, 웃음보다 어색한 침묵일 때가 더 많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이 스친다.


“내가 너무 나이 든 티 나는 건가.”


상처는 다른 장면에서도 터진다. 일을 시켰더니 후배가 묻는다.

“이걸 왜 제가 해야 하죠?”


오래 일한 사람 입장에서는 정면으로 권위를 치는 말처럼 들린다. ‘내가 너 몇 년을 챙겼는데, 지금 그 말을 하냐’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시키면 좀 하지, 왜 이렇게 토를 다나” 하는 볼멘소리도 따라 나온다.


“요즘 애들은 애사심이 없다”는 말이 여기서 붙는다. 예전처럼 몸을 던져 회사에 매달리는 모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정이 없어져서일까. 갈등의 뿌리는 말투나 유행어보다 깊은 데 있다. 서로 일과 관계를 어떤 틀로 해석하는지가 다르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각자 머릿속 자막이 다르게 달린다. 기성세대에게 회사는 한때 집 비슷한 곳이었다. “형, 동생 하자”는 말에는 함께 밤새고, 사적인 고민까지 나누면서 가족처럼 지내보자는 뜻이 섞여 있다. 그래서 회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생 이야기가 따라 나왔다.


지금 후배들은 조직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일하는 공간은 일하는 공간이고, 내 삶은 회사 밖에 따로 있다는 감각에 더 가깝다. 일은 철저히 역할과 책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업무 지시가 구체적이고, 기준이 잘 안 바뀌고, 감정 기복이 적은 상사를 제일 편하게 여긴다. 후배들이 상사에게 바라는 것도 트렌디한 농담이나 과한 친근감이 아니다. 자신이 맡은 일이 어디까지인지, 이 일을 제대로 끝내면 어떤 결과가 나는지, 방향과 기준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부사수를 미숙한 아이가 아니라 나와 계약을 맺은 파트너라고 가정해 보면 초점이 달라진다. ‘정 많은 형·어니’보다는 함께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일 잘하는 동료’ 쪽에 마음이 더 간다.


“왜요?”라는 질문도 그렇다.

기성세대는 “척하면 척” 알아서 움직이는 문화에 익숙하다. 눈치껏 파악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요즘 후배들은 말로 정리되지 않은 것은 모르는 것이라고 본다. 모르면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그들이 묻는 “왜”는 이 일을 왜 하는지, 전체 그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다는 신호에 더 가깝다. 전체 구조를 알아야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왜 자꾸 따지지?”라고 생각하기보다 “어디까지 설명해 줘야 같이 잘 뛸 수 있을까”를 한 번 더 떠올려 보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단순한 엑셀 정리처럼 보이는 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데이터가 다음 주 보고에서 승인받을 때 핵심 근거가 될 거야. 네가 숫자를 정확하게 정리해 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 그 한 줄이 들어가면, 같은 엑셀이라도 무게가 달라진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좌표를 찍어 주면 오히려 움직임이 빨라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애사심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요즘 세대가 회사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닐지 모른다. 다만 충성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많은 후배에게 회사는 평생 머물 집이 아니라 실력을 쌓고 이력을 만들 수 있는 거점에 가깝다. 이 관점을 비난만 하기보다는, 차라리 활용하는 편이 낫다.


“회사를 위해 희생해 달라”는 말은 잘 와닿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해 볼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끝까지 가져가면, 네 이력서에 이 일을 한 줄로 어떻게 적을 수 있을까 같이 보자.”


개인의 성장과 팀의 성과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연결되도록 도와주는 것. 지금 필요한 리더십은 그에 가깝다. 소통 방식도 조금 달라졌다. 요즘 후배들은 상사의 호감보다는 과정과 기준이 얼마나 투명한지에 더 신경 쓴다. “내가 널 좋아해서 점수를 잘 줬어”라는 말보다 “이 부분은 기준을 넘었고, 이 부분은 부족해서 이 평가가 나왔다”는 설명을 더 공정하게 느낀다.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를 먼저 밝히는 사람을 신뢰한다. 칭찬도 비슷하다. “역시 센스 있어, 잘했어”라는 말은 기분은 좋지만 금세 잊힌다. “이번에 네가 만든 보고서 구조 덕분에 회의 시간이 30분 줄었다” “이번 엑셀 함수 쓰는 방식은 그대로 팀 기준으로 쓰고 싶다” 이런 말은 오래 남는다.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와 정보를 숨기면 그들은 금세 눈치챈다.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거나 뭔가 감추고 있다고 의심한다. 기준을 미리 꺼내놓는 심판에 가까운 상사가 오히려 더 신뢰를 얻는다. 많은 상사가 ‘젊은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애쓴다. 유행어를 뒤늦게 따라 하고, 쿨한 척 거리를 좁혀보려 한다. 그런데 그런 노력은 대부분 금방 티가 난다.


세대 차이는 없애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원래부터 깔린 조건에 가깝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고, 아는 영역에서 확실하게 힘을 쓰는 쪽이 낫다. “요즘 트렌드는 너희가 나보다 훨씬 잘 알지. 대신 이 업무에서 리스크가 어디서 터지는지는 내가 더 많이 겪어봤다. 그 부분은 내가 책임질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상사는 후배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된다.


좋은 형·언니가 되려는 마음도 좋지만, 같이 일하자고 다시 찾게 되는 사람은 따로 있다. 능력 있고, 말을 뒤집지 않고, 예측 가능한 어른. 세대가 달라도 결국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는 그런 사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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