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누구의 선택이 만든 얼굴일까

기적을 기다리던 사람, 한 걸음 더 가는 사람

살다 보면, 이유를 설명하기도 애매한 막다른 구간이 한 번씩 찾아온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도 오늘이 새로 시작되는 느낌이 없고, 어제까지 애써 이어 온 일들이 한순간에 우스워진다. 괜히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고, “여기까지 온 게 맞나” 하는 의심이 목덜미를 잡아당긴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뒤돌아보면, 그 자리가 끝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양을 갖추기 직전, 마지막 비탈에 가까웠던 때가 많았다. 그때 겨우 버티고 지나온 덕분에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풍경들이 있다. 그때 포기했으면 보지 못했을 장면들이다.


그런 막막한 시기를 지날 때 사람들은 종종 신을 찾는다.


누구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누구는 마음속으로만 “나 좀 도와달라”라고 중얼거리면서 하루를 버틴다. 나도 그랬다. 밖에서 누가 와서 방향을 잡아주고, “지금 가는 길 맞다” 한마디만 해주면 좋겠다고, 스스로 결정을 미루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밖에서 떨어진 기적이 아니었다. 거창한 계시나 인생 문장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런 날에도 억지로 씻고, 꾸역꾸역 출근하고, 하기 싫은 전화를 한 번 더 걸어본 것.오늘까지만 해보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보던 그 작은 고집이 나를 다음 날로 넘겨줬다.


누군가는 그 순간들을 신의 도움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성격 탓이라고 넘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이렇게 믿는다. 어디선가 내려와 내 삶을 대신 걸어 줄 존재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살아오면서 쌓아 온 시간과 상처, 그 안에서 겨우 남겨 놓은 힘을 믿는 게 낫다고. 내 안에도 나를 떠받쳐 줄 만큼의 단단함이 조금씩 자라 있었다고.


우리는 태어날 때 부모를 닮아서 세상에 나온다.

얼굴도, 말투도, 처음 겪는 장면들 앞에서의 반응도, 어느 정도는 부모의 그림자를 따라간다. 그런데 어느 나이쯤이 되면 거울 속 얼굴이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분명 부모를 닮긴 했는데,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은 내 몫이다. 생각해 보면 그 표정은 내가 해온 선택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얼굴이다. 내가 골랐다고 믿었던 선택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길도 있다. 그렇지만 하루를 조금씩 어느 쪽으로 기울였는지,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과 중간에 내려놓아 버린 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지금의 나는, 정말 내가 바라던 선택들의 결과인가.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대단한 기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똑같이 막다른 구간에 서 있어도, “누군가 나를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과 “내 안에 남아 있는 힘을 믿고 한 걸음 더 걸어보는 사람” 사이에 생기는 아주 작은 차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 미세한 차이가 오래 쌓이면 전혀 다른 얼굴을 만들고, 전혀 다른 인생의 표정을 남긴다.


언젠가 거울 앞에 섰을 때, 나는 그 표정이 어떤 쪽에 가깝기를 바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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