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天道)는 정말 공평한가

불공정 앞에서 선을 포기하지 않는 법

요즘 세상을 보다 보면 이유를 잃는 순간이 있다.


법과 도리를 대놓고 비껴 가도 평생 넉넉하게 살고, 그 흐름이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장면이 있다.
반대로 욕심을 줄이고 말과 행동을 조심해 온 사람이 뜻밖의 자리에서 먼저 다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장면이 쌓이면 질문이 바뀐다.

“왜 저럴까”가 아니라
“정말 공평이라는 말이 현실에서 성립하긴 하는가.”


사마천은 이 질문을 이미 오래전에 붙잡고 있었다.
『사기』 「백이열전」에서 그는 사람들이 믿는 말을 먼저 적어 둔다.
천도는 치우치지 않고 선한 이와 함께한다는 말. 그 문장 앞에 백이와 숙제를 세운다.
끝까지 의를 지키며 굶어 죽은 사람들.


그가 숨기지 않는 감정은 단순하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떻게 서야 하는가.”


그는 안연의 삶도 끌어온다.
가난이 늘 곁에 있었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
반대편에는 도척이 있다.
포악함으로 악명을 남겼지만 수명은 길었던 인물.
선의 얼굴과 악의 얼굴을 나란히 세워 놓고, 사마천은 천도의 계산서를 요구한다.
하지만 계산서는 오지 않는다.


더 불편한 건 그가 이 문제를 ‘옛날이야기’로 끝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세에도 비슷한 풍경이 반복된다고 그는 적는다. 금기를 어기며 평생 안락을 누리고 부를 대대로 잇는 사람, 반대로 말과 행동을 가다듬으며 공정하지 않은 일에 마음을 쓰지 않으려다 재앙을 만나는 사람.


그래서 그는 솔직하게 말한다. 자신은 이 현실이 몹시도 의아하다고.


이 문장을 읽으면 불공정에 지친 마음이 잠깐 정지한다. 이 질문은 내 세대의 유행이 아니다. 인간이 오래 버티며 품어 온 의문이다. 그렇다고 이 의문이 “그러니 선은 접자”로 곧장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 결론은 너무 쉽고, 너무 빠르다. 사마천이 끝까지 피하려 했던 종류의 도망이기도 하다.


나는 이 대목에서 두 가지 방향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제도'다. 불의를 말하고 고치는 일은 여전히 필요하다. 세상이 저절로 기울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개인의 중심'이다. 결과가 바로 따라오지 않아도 어떤 편에 서서 살지 내가 정하는 일. 이건 낭만이 아니라 생존 방식에 가깝다. 세상은 완벽하게 공평하지 않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선택의 무게가 더 또렷해진다.


천도가 공평한지 아닌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불공평을 본 뒤에도 어떤 길을 택할지 스스로에게 묻는 태도만큼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붙들 수 있다. 내가 이해하는 ‘천도’는 거창한 우주의 비밀이라기보다

그 질문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의 자세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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