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의 더위가 1994를 데려왔다

도시락 다섯 개의 여름

2025년 올여름, 뉴스에서는 올해 폭염이 1994년과 견줄 만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 교실의 열기가 먼저 떠올랐다. 한 반에 학생이 빽빽했다. 창문은 끝까지 열려 있었지만 더운 공기는 그대로 눌러앉아 있었다. 선풍기가 돌 때마다 바람보다 소음이 먼저 지나갔다. 주번은 물을 떠 와 바닥에 뿌렸다. 젖은 바닥이 잠깐 시원한 척했다가 금방 말라버리던 장면이 아직 남아 있다.


선생님들은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칠판 앞에 섰다. 졸기라도 하면 손이 내려오던 것도, 그 시절의 현실이었다.

그때는 야간 자율학습이 생활의 일부였다. 무더위 속에서도 엄마는 도시락을 두 개씩 싸 주셨다.
누나 두 개, 나 두 개, 여동생 하나까지.
아침이면 식탁 위에 다섯 개의 도시락이 줄을 섰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새벽의 노동이 더 뜨겁다.
그 여름의 온도를 집에서 먼저 견디고 계셨던 셈이다.


나는 그중 한 통을 2~3교시 사이 쉬는 시간에 먼저 까곤 했다. 점심시간을 농구에 쓰고 싶어서였다. 들키면 빠따를 맞았다. 그래도 운동장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늘 더 빨랐다. 그때 내 머릿속은 NBA와 『슬램덩크』로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교실 밖의 1994년은 음악으로 가득했다. 스트리밍은 없었고, 골목의 스피커가 차트였다. 길보드차트라고 불렸다.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부활의 〈사랑할수록〉이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았다. 팝송은 라디오를 타고 흘러왔다. Boyz II Men, Ace of Base. 길에서 듣는 노래가 그날의 기분을 정했다.


교실 안에는 워크맨이 작은 시장을 이루고 있었다.
소니, 아이와, 마이마이.
테이프를 얼마나 돌려 들었는지가 중요했다. 김건모의 〈핑계〉 같은 곡은 늘어질 때까지 재생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는 공부는 뒷전이어도 어딘가 괜찮은 미래가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낙관을 퍼뜨렸다. 그 낙관은 뜨거운 여름을 버티게 해주는 작은 냉풍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해 여름이 음악과 농구만으로 채워져 있던 것은 아니다.


7월에는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지존파 사건이 사회를 뒤흔들었다.
가을로 접어든 10월에는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한쪽에서는 도시락을 나눠 먹는 평범한 하루가 흘렀고 다른 쪽에서는 나라 전체가 얼어붙는 장면이 이어졌다.
내 일상은 그대로였는데, 시대의 얼굴은 갑자기 바뀌어 있었다. 2025년의 무더위는 자꾸만 그해 여름을 데려온다. 1994년은 내게 학창 시절의 땀 냄새와 거리의 노래, 그리고 TV 뉴스의 무거운 화면이 한꺼번에 묶여 있는 해다.


뜨거웠던 온도만이 아니라 그때의 공기와 표정,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의 피곤함까지 함께 떠오른다. 기온 기록은 해마다 새로 쓰인다. 하지만 여름이 오면 지난날을 더듬게 되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고, 나도 그만큼 나이를 먹는다. 그런데도 그해 여름이 아직 선명하다는 사실이 세월이 흘렀다는 걸 제일 정확하게 알려준다.


1994가 돌아오는 이유는 더위가 아니라, 그 여름을 통과한 내가 아직 내가 맞다는 확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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