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늘 충성을 말하지만, 끝까지 버티지 못하는 건 따로 있다.
자기 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견제, 자기가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이다.
조광조의 죽음은 한 개혁가 개인의 실패로만 보긴 어렵다.
임금은 정치적 안정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는 항상 누군가의 희생이 따라붙었다.
조광조는 끝까지 군신 사이의 의리를 믿었지만, 최고 권력이 아닌 자가 권력 내부의 정의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지 묻는 질문 앞에서, 그의 결말은 꽤 냉정한 답을 내놓는다.
그가 서 있던 자리가 사헌부 대사헌이었다.
당시 가장 강력한 감찰 자리.
관리를 조사하고, 비행을 탄핵하고, 임금에게도 정면으로 직언할 수 있는 자리.
왕의 명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돌려보낼 수 있는 위치였다.
오늘로 치면 감사, 감찰, 공직윤리 기능을 한데 쥔 자리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법과 제도 속에서는 “권력을 견제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그 칼날이 권력의 심장부를 향하는 순간, 그 자리 자체가 제거의 명분이 된다. 제도와 권력의 간격은, 늘 그 지점에서 퍼렇게 드러난다.
조광조가 겨눈 대상은 중종반정 공신들이었다.
연산군을 내쫓고 중종을 세운 공을 인정받은 정국공신은 100명이 넘게 이름을 올렸고, 나중에는 여기에 더 얹어지기까지 했다. 실제 반정에 관여하지 않은 사람, 이미 죽은 사람, 공신의 친족까지 명단에 들어갔다. 공신에게 돌아가는 토지와 노비, 각종 특권은 국가 재정에도 큰 짐이었고, 무엇보다 정치 질서를 비틀어놓는 힘이 되었다. 조광조는 이 구조를 손대지 않고는 도덕 정치를 말할 수 없다고 봤다.
공을 지나치게 높이면 그 공이 언젠가 군주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자격이 없는 공신들의 이름을 명부에서 지우자는, 이른바 위훈삭제를 들고 나온다.
거짓 공훈을 걷어내고, 부당한 토지와 노비를 돌려놓자는 주장.
한마디로 특권 구조를 정리하겠다는 시도였다.
당연히 정국공신과 훈구 세력의 이해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중종 역시 반정을 가능하게 한 세력들의 반발과 정국 불안을 의식하면서, 조광조에게서 조금씩 몸을 뺐다.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조광조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지금 봐도 어이없는 죄목을 뒤집어썼다.
잎사귀에 글자를 써 벌레 먹은 흔적을 끌어다 반역의 징조로 만든 사건이다.
정치적 제거에 필요한 건 때로 이 정도의 상징이면 충분했다.
그는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서른여덟 살에 생을 마쳤다.
당대 기준으로 보아도 짧은 생이었다.
그가 추진한 현량과, 소격서 폐지, 관찰사 장기 재임 같은 개혁들은 대부분 되돌려졌고, 위훈삭제 역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다. 나라는 다시 몇 번의 사화를 겪다가, 결국 사림이 조선을 장악한다. 그리고 그 사림은 조광조를 “조선 도학의 정통”으로, 성리학적 개혁 정치의 상징으로 다시 세워 올린다. 명종 대에는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광해군 때 문묘에 종사되면서, 그는 뒤늦게야 공식적인 자리를 다시 얻는다.
그런데도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의 삶을 정리해 주는 졸기가 남지 않았다.
[졸기(卒記)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인물이 죽었을 때 붙는 ‘사후 인물 기록’이다. 보통 “아무개가 졸하였다”처럼 사망 사실을 적고, 그 사람의 관직 경력·행적·평판·장단점에 대한 사관의 정리나 당대 평가가 이어지는 형식이다. 즉, 실록 속의 작은 ‘미니 인물평’이자 공식 이력서+평전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기록으로 이해하면 된다)
다른 대신들의 졸기를 읽다 보면, 그들의 공과 과, 성품과 말년, 당대 여론까지 마무리로 정리되어 있다.
조광조에게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한 시대의 개혁을 이끌었던 인물이, 국가의 공식 기록에서조차 끝을 온전히 설명받지 못한 셈이다.
나는 이 지점이 늘 마음에 걸린다.
정치체가 그를 제거하는 방식이 단지 ‘사약 한 잔’에 그치지 않았다는 뜻이라서 그렇다.
육체를 치우는 것,
정책을 되돌리는 것,
마지막으로 기록에서까지 자리를 비워 두는 것.
권력이 불편해하는 사람을 다루는 세 가지 방식이 한 번에 겹쳐진 사건처럼 보인다.
역사에서 간언 하는 사람은 자주 밀려난다.
권력은 진실을 제거함으로써 잠시 평온을 산다.
이상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낸다는 건, 그런 구조를 어느 정도는 알고도 걸어 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조광조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단순하다.
“진실을 말하라”는 말보다,
“진실을 말할 때의 구조를 같이 보라”는 쪽이 조금 더 현실적이라는 것.
그럼에도 누군가는 또, 비슷한 자리를 향해 걸어간다.
그 반복이 완전히 멈춘 적은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