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연년생 _박 준
아랫집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갈 때마다 형 지훈이는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울고 동생 지호는 엄마, 엄마하고 운다. 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 지호는 옆에서 형아, 형아하고 울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중>
시가 두 문장밖에 안 되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길어서가 아니라, 남기는 방식이 단단해서였다.
「연년생」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름이 바뀌는 순간만 보여준다. 그걸로 끝을 짐작하게 만든다.
“실려 갈 때마다”라는 말부터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자주 아팠던 것 같고, 아이들은 그 장면을 여러 번 봤을 것이다.
응급차가 오고, 사람들 발소리가 커지고, 누군가가 들것에 실려 나가는 장면을.
그런 걸 반복해서 겪으면 아이들도 금방 익숙해진 척을 하게 된다. 그 자체가 슬프다.
형 지훈은 ‘어머니’라고 부르고, 동생 지호는 ‘엄마’라고 부른다.
같은 사람을 부르는데도 말의 거리가 다르다.
형은 한 번 더 단정하게, 동생은 더 붙어 있는 말로.
나는 여기서 이미 마음이 기운다.
형이 의젓해서라기보다, 의젓한 척을 해야 했던 것 같아서.
동생이 ‘엄마’라고 부르는 건 그냥 아이의 말인데, 그래서 더 아프다.
그런데 “그날”이 오면, 말이 한 칸 내려간다.
늘 ‘어머니’라 하던 지훈이 ‘엄마’라고 부른다. 버티던 말이 풀려버리는 쪽으로.
지호는 ‘엄마’ 대신 ‘형아’를 찾는다.
울음이 옮겨 간다.
전에는 엄마에게 “이제 어떡해”를 묻는 쪽이었다면, 그날부터는 형에게 묻게 된다는 뜻처럼 들린다.
돌아오지 않는 날이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시는 그걸 딱 잘라 말하지 않는데도, 나는 쉽게 알아버린다.
나는 아직도 엄마를 엄마라고 부른다.
별생각 없이 부르던 말인데, 이 시를 읽고 나니 어떤 날에는 그 말이 마지막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군가는 동생 때문에 빨리 철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의젓할 수는 없다. 정말로 떠나는 순간 앞에서는 누구나 아이가 된다. 그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대개 ‘엄마’ 일 거다.
부를 수 있을 때 한 번 더 부르는 것.
안부 한 번, 전화 한 통, 밥 한 끼. 미뤄둔 말 하나.
이름은 남아 있는데 사람이 없는 순간을 만들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