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이 비었는데 예의를 찾고 있진 않나요

직원들에게 애사심을 묻는 건 사실 무례한 일이다.


​종종 '문화'나 '가치'라는 이름으로 구성원들에게 고차원적인 품격을 요구한다. 주인의식을 가져라, 프로답게 행동해라, 조직의 명예를 생각하라.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화려한 수사들이 현장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이유를 우리는 정말 모르는 걸까.


​관자는 수천 년 전, 이 문제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게 넉넉해야 명예와 치욕을 안다고. 원문은 투박하지만 서늘하다. 옷과 밥이 해결되지 않은 사람에게 '영욕(榮辱)'을 가르치는 것만큼 공허한 짓은 없다는 뜻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리더가 "요즘

애들은..."이라며 태도를 탓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그들이 지켜야 할 '예절'과 '명예'를 담을 그릇, 즉 삶의 안정감이라는 창고를 먼저 채워주었는가.


여기서 말하는 창고는 단순히 월급봉투의 두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고 있다는 확신, 그리고 최소한 내일의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적 안전장치다.


​치국의 도는 반드시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필선부민(必先富民)'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관자는 말한다. 이건 인류애에 호소하는 자선사업가적 발언이 아니다. 지극히 전략적이고 계산적인 통치 방략이다.


백성이 부유해야 나라를 다스리기 쉽고, 가난하면 어려워진다는 건 경영에서도 불변의 진리다. 곳간이 빈 사람은 당장 눈앞의 낙곡(落穀)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시야가 좁아진 이들에게 조직의 비전이나 품격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설계가 잘못된 판이다.


​유능한 리더는 명분을 앞세워 사람을 굴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구성원의 창고에 구멍이 나지는 않았는지, 그들이 '예의'를 차릴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를 가졌는지를 먼저 살핀다.


​결국 HR의 본질도, 리더십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구성원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조직을 가장 쉽게 움직이는 방법이라는 것.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은 단순한 속담이 아니라, 조직을 지탱하는 가장 효율적인 경영학이다.


지금 요구하고 있는 그 '예의'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혹시 텅 빈 창고 앞에서 품격만을 외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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