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는 결코 제자리걸음 하지 않는다
새해가 밝았다고 갑자기 세상이 다정해질 리 없다. '좋은 일만 가득하시라'는 말은 사실 고단한 서로를 다독이는 무력한 인사치레에 가깝다. 냉정하게 말해, 달력 한 장 넘겼다고 없던 운이 갑자기 쏟아지진 않는다.
실상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갈등, 그리고 내일의 피로가 이미 문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인생은 원래 쉽지 않고, 올해도 꽤 자주 지칠 게 뻔하다.
그런데 가만히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하루를 버티게 하는 건 거창한 성공이나 원대한 비전이 아니었다.
퇴근길 차창 너머로 마주친 붉은 노을,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 혹은 지독한 업무 끝에 들이키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이 대수롭지 않은 순간들이 나를 일으켜 세윘다. 대단한 성취가 나를 구원할 것 같지만, 실상 나를 내일로 밀어 넣는 건 이런 일상의 평범한 조각들이다.
세상을 살아내는 건 거창한 신념이 아니라, 어쩌면 이 '소소한 행복'이라는 영양제를 제때 챙겨 먹느냐의 문제 아닐까 싶다.
그리고 파도가 언제나 오고 가듯,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결국 완성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파도를 보며 제자리걸음이라 말하지만 파도는 결코 헛되이 움직이지 않는다.
해안선의 모양을 바꾸고, 날카로운 돌을 둥글게 깎아내며, 끝내 지형을 완성한다. 수많은 사건의 시작과 끝을 지켜보며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어떤 지루한 공방과 고통스러운 과정도 결국은 '종결'과 '완성'을 향해 흐른다는 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모든 것이 가고, 모든 것이 되돌아온다. 존재의 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라고 했다. 이 반복의 굴레가 형벌처럼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사실 그 오고 감 속에 우리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피할 수 없는 파도라면 그 틈바구니에서 나를 웃게 할 구실들을 악착같이 찾아내야 한다. 그게 대단한 결심보다 훨씬 실속 있고 영리한 생존 전략이다.
남들이 말하는 막연한 복을 기다리지 않으려 한다. 대신 내가 직접 만든 작은 기쁨들로 삶의 마디마디를 채워갈 생각이다. 버티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면, 그 버팀의 기술은 결국 이 시시하고 소소한 것들을 지켜내는 힘에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