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약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진짜 내 모습입니다

큰일 한다는 명분 아래, 곁에 있는 사람의 눈물을 외면하고 있진 않나요?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포효하던 정치인들이, 돌아서자마자 보좌관의 인격을 짓밟는 풍경을 보게 되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비극이다. 수십만 팬의 사랑을 먹고사는 연예인이 카메라 뒤에서 매니저를 소모품처럼 부리며 폭언을 쏟아내는 실상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이나 ‘팬’은 그토록 고귀한데, 왜 바로 옆에서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는 한 사람의 인간은 그토록 하찮게 취급받는 걸까.


1.png


이 지독한 모순에 대해 헤르만 헤세는 이미 백 년 전, 날카로운 문장으로 비수를 꽂았다. 그의 산문 <소설을 읽으며(Beim Lesen eines Romans)〉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Es gibt Menschen, welche die Menschheit verehren, aber ihren Diener quälen; die dem Vaterland, der Kirche, der Partei huldigen, aber die kleinen täglichen Dinge des Lebens roh und lieblos behandeln. Hier beginnt der Verfall." (Hermann Hesse, „Beim Lesen eines Romans “, Die Neue Rundschau, 1933)


"인류는 존중하지만 자기 하인은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조국이나 교회나 당은 숭배하면서 일상의 자잘한 일들은 거칠고 애정 없이 다루는 태도, 거기서 붕괴는 시작된다."


인류애라는 거창한 구호는 누구나 뱉을 수 있는 값싼 장식품일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대중을 향한 사랑은 쉽지만, 내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사람이나 내 일정을 관리하느라 잠을 설치는 이의 피로를 들여다보는 일은 고통스러운 인내와 진짜 인격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거대한 시대적 담론이나 조직의 성취가 중요하다고 믿으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무례는 '어쩔 수 없는 희생'쯤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헤세는 단호하게 말한다. 바로 거기서 ‘붕괴(Verfall)’가 시작된다고.


2.png


이러한 붕괴는 거창한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아주 작은 관계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곰팡이 같은 것이다. 일상의 자잘한 일들을 거칠게 다루는 태도는 결국 자기 존재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었다는 증거다. 진정한 고결함은 높은 단상 위에서의 연설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좁은 복도에서 건네는 다정한 말 한마디, 타인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 한 조각에서 피어난다.


3.png


우리가 믿고 따르는 이들이, 혹은 나 자신이 숭고한 목표를 좇는다는 핑계로 발밑의 진실을 짓밟고 있지는 않은지 뼈아프게 물어야 한다. 붕괴를 막는 건 대단한 구호가 아니라, 내 곁의 한 사람을 온전한 우주로 대우하는 그 지극히 평범한 예의에 있다.

이전 14화질문을 바꾸면 면담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