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죽음으로 가는 길 위에서, 우리 중 누구도 완전한 이는 없다. 그래서일까. 타인의 불행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 결국 내 일이 아니니까.
옆 동네에서 큰 사고가 나 누군가 생을 달리했다는 뉴스보다, 지금 내 종이에 살짝 베인 손가락 끝의 아릿함이 더 절박하게 다가오는 것이 인간이다.
멀리서 벌어진 비극은 내 일상에 어떤 균열도 내지 못하고, 나의 하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흘러간다. 그럴 때마다 "나만 괜찮으면 됐다"는 안도감이 고개를 드는 것도, 솔직히 말하면 인간다운 본능이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지점은 바로 그다음이다. 내가 아프지 않다고 해서 타인의 고통을 내 이익을 위한 도구로 쓰거나, 무관심을 방패 삼아 외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누군가의 무너진 삶을 조롱거리로 삼거나, 그 깊은 상처를 가볍게 여기며 다시 생채기를 내는 행동은 그 어떤 생존 본능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세상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고, 모든 고통에 응답할 수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 누군가의 구덩이를 더 깊게 파지는 말아야 한다. 나의 짧은 경험과 얄팍한 지식으로 타인의 지옥을 다 안다는 듯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멈춰 서야 한다. 내 선택과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어떤 흉터가 될지, 그것이 정말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인지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타인의 고통에 온전히 빙의할 수는 없어도, 그들의 아픔에 곁을 내주려는 태도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결국 인간다움이란, 나의 안락함과 즐거움을 위해 타인의 비명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누군가 떨리는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모질게 쳐내지 않는 그 작은 멈춤만으로도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살 자격을 얻는다.
"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
— Ian Maclaren, The British Weekly (1897)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각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