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시대, 판결문에 숨은 '사람의 얼굴'을 읽다.

진영의 논리가 가두지 못한, 그날 밤의 '울컥함'

판결마저 어느 진영에 서 있느냐에 따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세상이 되었다.

이번 23년 선고 역시 누군가에게는 마땅한 정의의 실현으로,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소모될 모양이다. 판결 이유보다 선동의 구호가 더 힘을 얻는 시대, 우리는 판결문의 행간에 숨은 '인간의 얼굴'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23년.


이 숫자가 법정을 울릴 때, 판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람들은 그 울컥함조차 진영의 잣대로 재단하려 들겠지만, 나는 그보다 앞선 다른 울컥함을 기억한다.

2024년 12월 3일 밤, 여의도 아스팔트 위에서 한 중년 남성이 20대 청년의 등을 떠밀며 내뱉은 투박한 한마디다.


"야, 너희들 집에 가. 총 맞아."


그건 정치적 계산이 아니었다.

비겁한 도피 권유도 아니었다.

"우리는 살만큼 살았으니 남을 것이고, 너희는 죽어서는 안 된다"는, 이 지독하게 모순적인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최후의 보루였다. 이른바 '어른의 양심'이다.


살만큼 산 어른이 정말 이 세상에 있을까.

차 뒤편에 '아이부터 구해주세요'라는 스티커를 정성껏 붙여놓고는, 정작 학교에서는 남의 귀한 자식인 초등 교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게 인간이다. 잔혹함과 동정심이 한 몸에 섞여 있는 이 모순 덩어리들을 법이라는 차가운 이성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소대장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민간인에게 총을 쏘지 마라, 그게 네 목숨을 지키는 길이다"라고 침착하게 타이르던 어느 아버지의 음성을 떠올린다. 그건 군령보다 무거운 생명의 명령이었다.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며느리와 장모, 아들딸이 엉켜 울며 나누던 통화들. 그 떨리는 목소리들이 모여 결국 총구를 내리게 했고, 역사의 파국을 막았다.


작년 광장의 풍경은 묘했다.

입술이 바짝 마르는 추위 속에서, 최애 가수의 응원봉을 흔들며 버티던 고등학생과 대학생들. 그 형형색색의 불빛이 탱크의 궤도보다 강해 보였던 건, 그들 뒤에 "고맙다, 너희 덕분에 역사가 반복되지 않겠다"며 고개를 숙이던 기성세대의 참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를 겪어낸 세대의 눈물과 아이돌 응원봉이 만나는 지점에서 민주주의는 비로소 세대를 넘어선 생존의 언어가 되었다.


판단은 결국 양심에 근거한다.

판결은 그 양심이 지나간 자리를 기록한 사후 보고서일 뿐이다.

진영의 논리가 판결의 본질을 가릴 수는 있어도, 그날 밤 우리가 서로의 목숨을 귀히 여겼던 그 떨림의 기억마저 지울 수는 없다.


진영이 뭐라고 하든, 우리가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손을 맞잡았던 그 온기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은 잔혹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질 만큼 따뜻하기도 하니까. 그 양심이 흐르는 한, 역사는 결코 뒤로 흐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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