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사유서라는 가면, 그리고 리더라는 이름의 범인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종이 한 장.
거기 적힌 ‘더 좋은 기회’, ‘학업’, ‘잠시 쉬고 싶다’는 말들. 정말 그걸 곧이곧대로 믿나? 그렇다면 당신은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아니면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거다. 그 상투적인 문장들은 당신의 얼굴을 보며 마지막으로 예의를 갖춘 게 아니다. 그저 끝까지 척지기 싫어서, 당신과 더는 섞이기 싫으니까 던져주는 ‘회사 핑계’ 일뿐이다.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을 떠나는 거다. 당신은 그걸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착각하고 싶겠지만, 실상은 정중한 ‘손절’에 가깝다. 그 직원이 당신에게 건넨 마지막 배려는, 사실 "더 이상 당신과 엮이고 싶지 않으니 조용히 사라지겠다"는 최종 통보다. 당신과 보낸 시간이 더는 견딜 수 없는 소모라고 결론 내렸기에, 그들은 구구절절한 진실 대신 가장 안전한 거짓말을 택한 것이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의 모든 고통은 결국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단언했다. 퇴사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관계의 파열이다.
"All problems are interpersonal relationship problems." -Alfred Adler, What Life Could Mean to You (1931)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팀원이 계속 바뀐다면 이제 애꿎은 시스템 탓, 복지 탓, 요즘 애들 탓은 그만둬야 한다. 비슷한 환경에서도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떠난다면, 그 차이는 결국 당신에게서 온다.
리더인 당신이 팀원에게 어떤 지옥이었는지, 혹은 얼마나 무력한 벽이었는지 퇴사자는 종이 한 장에 절대 적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문을 닫고 나가며 당신이라는 존재를 자신의 인생에서 지워버릴 뿐이다.
조직의 밀도가 낮아지고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갈 때,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채용 공고를 다시 올리는 게 아니다. 조용히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대면하는 것이다. 거기 당신이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범인’이 서 있을 테니까.
당신의 리더십이 누군가의 열정을 갉아먹지는 않았는지,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겐 탈출하고 싶은 감옥은 아니었는지. 그 거울 속의 얼굴을 직시하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연쇄적인 ‘손절’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