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맞히느라 사람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기를
우리는 언제부턴가 너무 뾰족해졌다.
단톡방의 말투 하나, 업무 메일의 사소한 실수, 약속 시간에 5분 늦는 일까지. 매 순간 마음속에 자를 들고 다닌다. 그 자로 남을 재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베어낸다.
기준이 명확할수록 유능해 보인다는 착각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정답만 맞추며 살다 보니, 주변에 남은 건 차가운 정적뿐이다.
사람이 먼저 다치고 나서야 우리는 깨닫는다.
그 정답이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큰 조직이나 큰일에는 당연히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건 비바람을 막아주는 지붕 같은 거니까.
하지만 집 안에서까지 지붕의 무게를 견디며 살 순 없다.
사소한 일에는 원칙보다 이해나 연민의 한마디가 훨씬 힘이 세다.
"그럴 수도 있지"
"무슨 사정이 있겠지."
이 짧은 문장들이 날 선 관계를 녹인다.
원칙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을 밀어내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
칼날을 밖으로 휘두르기 시작하면 그건 더 이상 원칙이 아니라 폭력이다.
원칙이 정말 권위를 가지려면,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여백이 있어야 한다.
이제 자를 내려놓아도 괜찮다.
모든 순간에 엄격할 필요는 없다.
정말 중요한 원칙은 마음속 깊이 간직하되, 겉으로는 부드러운 이해와 연민을 보여주는 것.
그게 진짜 어른의 태도다.
사람을 잃으면서 지켜낸 원칙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우리 곁에 남는 건 '옳은 말'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내 서툰 실수를 말없이 덮어주던 따뜻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