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의 하중, 그 서늘한 진실

2등은 기억되어도, '태도' 없는 성취는 휘발된다

결과가 전부인 세상이라지만, 때로 그 결과가 가장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다.

《흑백요리사 2》의 준우승자 '요리괴물' 이하성 요리사를 보며 느끼는 서늘함이 딱 그렇다. 2위라는 성적표는 분명 화려하지만, 이상하게도 대중의 기억 속에서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 반면 1등 최강록, 그리고 후덕죽 요리사나 손종원 요리사가 남긴 잔상은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진다. 왜일까? 단순히 프로그램이 만든 캐릭터 탓일까?


냉정하게 말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제작진이 특정 출연자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소위 '악역'이나 '트러블 메이커' 설정은 시청률을 견인하는 가장 뻔하고도 강력한 수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흑백요리사 2》의 이하성 요리사, 즉 '요리괴물'은 그저 제작진이 설계한 캐릭터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자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전문직 요리사에게 약간의 오만함이나 모난 성격은 오히려 '장인 정신'의 다른 이름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실력만 있다면 그 정도 흠결은 대중의 눈에 '매력적인 고집' 정도로 비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모남'의 결이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 만큼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숭고하지도 않았다는 데 있다. 명확한 악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압도적인 실력으로 모든 비판을 잠재우는 카리스마를 보여준 것도 아닌, 그 애매모호한 지점에서 오만한 '척'을 하는 모습은 대중에게 '계산된 연기' 혹은 '기민한 반응'으로 읽혔다. 제작진의 캐릭터 부여라는 방패 뒤에 숨기에는,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그 미세한 태도의 파동이 시청자들의 본능적인 거부감을 건드린 것이다.


"Everything can be taken from a man but one thing: the last of the human freedoms—to choose one’s attitude in any given set of circumstances, to choose one’s own way." — Viktor Frankl, Man’s Search for Meaning (1946) _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만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다.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존엄을 지킨 빅터 프랭클의 말처럼, 태도는 우리가 가진 마지막 자유이자 최후의 보루이다. 이하성 요리사의 2위가 쉽게 잊히는 건, 대중이 그에게서 '스스로를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장인'의 태도보다 '상황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계산'을 먼저 읽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반면 우리가 최강록이나 후덕죽에게 열광하는 건, 그들이 보여준 미련할 정도의 고집과 숭고한 예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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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중이 화면을 통해 받는 느낌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다. "이건 편집이야", "전문가라면 저럴 수 있어"라는 이성적 변호가 먹히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타인을 바라볼 때 기술보다 그 사람의 '결'을 먼저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려한 캐릭터의 옷을 입혀도, 그 옷 사이로 비치는 본연의 태도가 빈약하면 대중은 그것을 귀신같이 알아다.


Winston Churchill, Many Years Later (1947) — "Attitude is a little thing that makes a big difference." — "태도는 사소한 것이지만, 그것이 만드는 차이는 거대하다."


이건 우리가 평소엔 공기처럼 가볍게 여기던 ‘태도’라는 녀석이, 결정적인 순간에 얼마나 무거운 하중으로 우리 삶을 짓누르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증거다. 실력은 문을 열어주지만, 태도는 그 방의 공기 질을 결정한다. 기술은 연마하면 비슷해질 수 있지만, 삶을 대하는 근본적인 눈빛과 태도의 향취는 결코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모습만 봐도 태도의 하중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트레이너가 시키는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횟수 채우기에만 급급한 사람은 몸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반면, 고통스럽더라도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왜 이 자세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파고드는 사람의 몸은 결과가 다르다. 그 사소한 '왜'라는 태도가 실력의 임계점을 결정하는 것이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불친절한 곳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 사람이 일을 대하는 철학, 즉 태도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재능이 없어서, 혹은 환경이 안 좋아서 안 된다고 핑계를 대지만, 실상은 압도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생의 태도'를 스스로 저버리고 살 때가 더 많다.


Charles R. Swindoll, Strengthening Your Grip (1982) — "I am convinced that life is 10% what happens to me and 90% of how I react to it. And so it is with you... we are in charge of our Attitudes." — "나는 인생의 10%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고, 나머지 90%는 그 일들에 대한 나의 반응이라고 확신한다. 당신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인생의 태도는 우리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중간만 해라",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는 말이 영리한 처세술처럼 떠도는 세상이지만, 그런 식으로 시간을 죽이는 태도는 결국 스스로를 가장 먼저 불행하게 만든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계산적인 마음은 독처럼 번져서, 가장 사랑해야 할 배우자와의 관계마저도 '거래처 장부'로 바꿔버린다. 모든 삶의 순간을 계산기로 두드리는 인생, 그 끝에 남는 건 차가운 공허뿐이다. 계산기를 내려놓고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그 어떤 영리한 전략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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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면접관들이 여전히 학벌이 좋고 학점이 높은 사람을 눈여겨보는 본질적인 이유를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그들이 똑똑해서가 아니다. 하기 싫은 공부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의욕적으로 매달렸던 그 '태도'의 이력을 보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기꺼이 고통을 선택하고 끝을 봤던 사람이라면, 우리 조직에서도 그 단단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강력한 기대 때문이다.


결국 학벌, 집안, 재산 그 무엇도 이길 수 없는 단 하나의 천하무적 무기는 태도뿐이다.


Epictetus, Enchiridion (c. 135 AD) — "Men are disturbed, not by things, but by the principles and notions which they form concerning things." —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물에 대해 그들이 품고 있는 원칙과 생각(태도)이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설파했듯,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질서이다. 태도는 평소엔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중심이 흔들리는 순간, 그것은 나를 지탱하는 가장 무거운 추가 되거나 나를 침몰시키는 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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