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둔 모든 일이 '꿈'이라는 무덤으로 향하기 전에
최강록 셰프가 마지막 미션을 앞두고 “허상의 끝을 깨고 나가겠다”라고 했을 때, 처음엔 그저 그만의 독특한 화법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즌 1부터 그의 행보를 다시 복기해 보니 그건 헛소리가 아니라 아주 지독하게 일관된 철학이었다.
그는 이 경연을 ‘세계관’이나 ‘허구의 세계’라 불렀다. 현실의 나를 지키기 위해 세트장 안의 나를 분리한 셈이다.
어차피 누군가 설계한 가상의 스테이지라면, 적어도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NPC는 되지 않겠다는 선언 같았다.
재밌는 건 그가 싸운 대상이다. 남을 밀어내려 애쓰는 게 아니라, 기괴할 정도로 자기 자신과만 싸우고 있었다.
시즌 1에서 동료들이 자길 믿어주지 않고 사사건건 반대하던 그 환경은 사실 현실의 주방보다 더 가혹한 감옥이었을 거다. 그래서 이번엔 전략을 바꾼 듯했다.
가스가 무제한으로 나오고 주방이 회전하는 이 비현실적인 세트장을, 현실에선 불가능했던 ‘자기 증명’의 실험실로 삼은 것이다. 3시간 동안 재료를 조리는 무모함은 오직 이 가짜 세계에서만 가능한 사치였고,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대파의 모든 것을 까발리고, 1대 1 사생전에서는 ‘내가 혼자라면’이라는 요리로 자기 내면의 고독을 접시 위에 적나라하게 올려버렸다.
마지막 미션에서 그는 90분 동안 오로지 ‘자기 점검’에 몰두했다. 핵심은 ‘내 맘대로’였다. 평생 조림을 잘하는 척하며 살았지만 사실은 늘 버거웠던 자기 인생을 스스로 위로하는 과정.
“오늘만큼은 조림에서 쉬라”며 들이킨 노동주와 취침주는 투박한 소주, 그것도 근본의 '빨뚜'(빨간 뚜껑)였다. 화려한 경연장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투박한 술 한 잔이, 오히려 세트장이라는 허구의 벽을 무너뜨리고 그를 가장 현실적인 인간으로 돌려놓으며 경연 주제인 '나를 위한 요리'에 최적화된 서사를 만들어냈다
앙드레 지드는 그의 저서 <가을 잎(Autumn Leaves)>에서 이렇게 말했다.
"C’est mieux d’être détesté pour ce que tu es, que d’être aimé pour ce que tu n’es pas."-당신이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보다, 당신의 본모습 때문에 미움받는 것이 더 낫다.
최강록은 '조림의 대가'라는 허구의 이미지로 사랑받기를 포기하고, '조림이 힘들어 빨간 뚜껑 소주를 마시는 나'라는 정직한 실체를 선택했다.
"저는 조림을 잘 못하지만, 조림을 잘하는 척했습니다."
"저는 특별한 요리사는 아니고요. 전국의 모든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티 나지 않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그중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이 한마디가 전국의 요리사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됐을까를 생각해 본다.
안성재 심사위원이 그 요리를 먹고 뱉은 "어니스트(Honest)하다"는 말은 그래서 더 날카롭게 꽂힌다. 시스템이 만든 허구의 공간에서 유일하게 가짜가 아니었던 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빨간 뚜껑 소주 한 잔에 털어버린 그의 정직함이었으니까.
살면서 꿈이 참 많았다. 처음에는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미뤄둔 일을 꿈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틈엔가 이제는 영영 할 수 없게 된 일을 꿈이라고 부르게 됐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들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모두 꿈이 된다. 지레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미뤄둔 모든 일들은 그렇게 영영 꿈으로 남게 된다.
최강록이 마지막에 나직하게 읊조린 "재도전하길 잘했다"는 말은, 미뤄두었던 그 '꿈'을 다시 '지금'의 영역으로 끌어온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승전보였다.
그는 과거의 실패에 박제되지 않았고, '언젠가'라는 허구 뒤로 숨지도 않았다.
결국 우리 삶도 각자가 만든 허상과 현실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최강록이 보여줬듯, 스스로를 이겨먹는 게임을 마스터한 사람에게 '실패'라는 단어는 무의미하다.
고독한 유저가 미션을 완료하고 로그아웃하는 뒷모습을 보며, 나도 우리도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님을 느낀다.
힘이 닿는 한, 우리도 우리만의 '어니스트 한' 접시를 계속 내놓아야 한다. 영영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