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을 기다리는 서툰 발걸음

나이가 들고 연차가 쌓이면 모든 게 능수능란해질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여전히 새로운 시작 앞에 서서면 마음이 떨린다.

경험이 많다고 해서 '처음'이 주는 그 생경한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으니까.


​시작은 원래 서툴다.


누굴 만나든, 어떤 일을 맡든 누구나 어설픈 몸짓으로 첫발을 뗀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설수록 조급함은 실수를 부르고, 그 실수는 다시 자책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타인의 노련함이란 대개 '아픔에 무뎌진 척' 연기하는 법을 익힌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아직도 서툴다고 자신을 몰아세울 필요도, 누군가의 어설픔을 면박 줄 이유도 없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낯설고 아프다. 그저 눈 질끈 감고 그 불안을 통과해 보는 수밖에 없다.

관계를 맺을 때 '의리'라는 말을 앞세우지 않은지 꽤 오래됐다. 의리는 표방하거나 선언하는 구호가 아니다. 삶의 궤적을 따라 조용히 흐르다 어느 순간 발끝에 고이는 침전물 같은 것이니까.


사람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는 습관은 차가운 냉소가 아니다. 수많은 실망과 상처가 남긴 지극히 현실적인 흉터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지만 생각한다. '준 만큼 받아야겠다'는 계산기를 치우고 나니, 신기하게도 섭섭함이 먼저 자취를 감췄다.

회사라는 조직도 그렇다. 동료라 불리는 집단이 이해관계에 따라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관계의 폭은 자연스레 좁아졌다. 누군가는 외롭지 않으냐 묻겠지만, 오히려 편안하다. 타인의 평판이나 소문에 휘둘리기보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의 본연에 집중할 수 있는 밀도가 생겼기 때문이다. 좁아진 관계의 틈새로 비로소 깊이가 들어앉았다.


사람 때문에 마음을 다치는 일은 이제 드물다. 다만 내가 관계를 선택하고 때로는 스스로 벽을 세우며 산다는 사실이 가끔 묘한 아쉬움을 남길 뿐이다. 그럼에도 억지로 붙잡거나 쫓지 않기로 한다.


​시절인연(時節因緣). 때가 되면 자연히 부딪쳐 깨달음의 소리가 나고,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척척 돌아가며 나아갈 길을 일러줄 것이다.


지금 내 곁의 서투름도, 좁아진 인연의 폭도 결국은 그 흐름 속에 있다. 무리하지 않고, 그저 흐르는 대로 나를 맡겨둔다.


결국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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