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탓하기 전에, 시스템을 의심하라
조직에서 누군가를 '문제 직원'이라고 부르는 순간, 묘한 일이 벌어진다. 원인 분석이 끝나버린다. "저 사람이 문제니까"라는 결론이 먼저 내려지고, 왜 그런 행동이 나왔는지, 조직이 어떤 맥락을 만들었는지는 더 이상 질문되지 않는다. 편하다. 하지만 그 편함이 조직을 더 나쁜 방향으로 끌고 간다.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와 미카엘라 케리시(Michaela Kerrissey)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 교수는 2025년 Harvard Business Review 기고에서 이렇게 짚었다.
"Psychological safety is entirely consistent with kindness, but let's distinguish between being nice and being kind. Nice is the easy way out of a difficult conversation. Kind is being respectful, caring, and honest." _ "심리적 안전감은 친절함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상냥한 것(nice)'과 '친절한 것(kind)'은 구분해야 한다. 상냥함은 어려운 대화를 피하는 쉬운 길이다. 친절함은 존중하면서도 솔직한 것이다." — <Amy Edmondson & Michaela Kerrissey, Harvard Business Review(May–June 2025)>
누군가에게 '문제 직원'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건, 어찌 보면 상냥함의 반대편에서 작동하는 같은 회피 메커니즘이다. 솔직하게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대신,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쪽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이미 40년 전, 품질 경영의 아버지 W. 에드워즈 데밍(W. Edwards Deming)은 직원 성과 변동의 90~95%가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Out of the Crisis, p.315). 사람을 탓하는 건 쉽지만, 그 사람이 일하는 프로세스·교육 체계·소통 구조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사람만 바꿔가며 반복된다.
이건 40년 전 제조업 이야기가 아니다. 콜로라도 대학교 Kirk 등의 연구(Small Group Research, 2022)는 팀 내에서 특정 구성원을 공개적으로 부정적으로 낙인찍는 행위(public negative labeling)가 오히려 팀 전체의 성과를 떨어뜨린다는 것을 세 차례의 실험과 한 차례의 현장 연구를 통해 입증했다.
낙인이 찍힌 당사자만 위축되는 게 아니다. 그걸 지켜보는 동료들이 팀 내 상호작용의 질을 낮게 평가하기 시작하고, 그 인식이 팀 전체의 협업과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은 특히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지적했다. 반생산적 업무 행동(counterproductive work behavior)이라 불리는 '문제 행동'의 상당 부분은 개인 내(within-person) 변동, 즉 그 순간의 감정 상태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나쁜 직원'이 늘 나쁜 게 아니다. 누구나 컨디션이 나쁜 날이 있고, 환경이 그것을 증폭시키거나 완화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자꾸 사람에게 원인을 돌릴까.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근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부른다. 상황적 요인보다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에 원인을 돌리는 인간의 본능적 경향이다.
에드먼슨과 케리시는 같은 기고에서 심리적 안전감에 대한 또 다른 핵심 오해를 짚었다. 심리적 안전감이 정책이나 규정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다.
"Psychological safety, rather than being created by a policy, is built in a group, interaction by interaction." - "심리적 안전감은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 안에서 상호작용 하나하나를 통해 구축되는 것이다." — <Amy Edmondson & Michaela Kerrissey, Harvard Business Review(May–June 2025)>
여기서 핵심은 '상호작용'이다. 누군가의 실수에 조직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그 조직의 학습 능력을 결정한다. 에드먼슨의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패턴이 있다. 실수를 많이 보고하는 팀이 성과가 더 좋다는 것이다. 실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실수를 숨기지 않기 때문에 더 빨리 배우고 적응한다. 반대로, 실수를 지적당하거나 낙인찍힐 것이 두려운 환경에서는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닌데, 조직은 그걸 '문제없음'으로 착각한다.
갤럽(Gallup)의 2025년 글로벌 직장 현황 보고서는 이 문제를 숫자로 보여준다.
2024년 전 세계 직원 몰입도(employee engagement)는 23%에서 21%로 하락했다. 12년 만에 두 번째 하락이며, 코로나 팬데믹 초기와 동일한 수준의 급락이다. 이로 인해 세계 경제에 약 4,380억 달러(한화 약 600조 원)의 생산성 손실이 발생했다고 갤럽은 추산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하락의 원인이다. 일반 직원의 몰입도는 18%로 변동이 없었다. 급락한 건 관리자(manager)의 몰입도였다.
30%에서 27%로 떨어졌고, 특히 35세 미만의 젊은 관리자는 5% 포인트, 여성 관리자는 7% 포인트나 하락했다. 갤럽의 핵심 발견 하나가 여기에 있다. 팀 몰입도의 70%는 관리자에 의해 결정된다. 관리자가 무너지면 팀이 무너지고, 팀이 무너지면 조직이 무너진다.
다시 말해, '문제 직원'이 있는 팀에서 정작 먼저 물어봐야 할 질문은 "그 직원이 뭘 잘못했나"가 아니라 "그 팀의 관리자는 어떤 상태인가, 그 관리자에게 조직은 무엇을 지원하고 있는가"다.
한국의 맥락에서 이 문제는 더 복잡한 결을 갖는다.
김성준·이중학·채충일의 연구(조직과 인사관리연구, 2021)는 한국 기업에서 '꼰대'라는 용어가 단순히 나이 많은 상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텍스트 마이닝을 통해 보여주었다. '꼰대'는 위계와 권력 구조를 지칭하는 단어들과 함께 나타났고, '젊은'이라는 수식어와도 빈번하게 결합했다. 핵심은 나이가 아니라 구조다. 수직적 문화와 수평적 문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온정주의와 성과주의 사이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은 채 축적될 때, 조직은 특정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문제 직원'이든 '꼰대'든, 낙인의 대상만 달라질 뿐 구조는 같다.
2024년 한국의 대표적 사례도 있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조직문화 측정 도구로 사용되던 GWP(Great Work Place) 지수가 리더 평가의 인기투표로 변질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업무 강도를 높이면 낮은 점수를 받아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고, 업무를 줄이면 점수가 올라가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시스템이 의도와 정반대로 작동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행동을 왜곡하는 시스템이 문제였다.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이나 속도는 다르다. 누군가는 명확한 지시가 있어야 움직이고, 누군가는 자율적인 공간에서 더 잘 작동한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고, 어떤 사람은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걸 '문제'로 볼 것인가, '다름'으로 볼 것인가는 조직의 선택이다.
PwC의 2025년 글로벌 직장인 조사(Global Workforce Hopes and Fears Survey 2025)에서 에이미 에드먼슨의 연구를 인용하며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조직에서 핵심은 '건설적 솔직함(constructive candor)'이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반대 의견을 내고,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문화. 실패가 끝이 아니라 과정의 일부로 용인되는 문화. 그래야 비로소 혁신이 가능하다.
이것은 사람을 바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환경을 바꾸라는 이야기다. 조직이 사람을 끼워 맞추려고만 하지 않고, 일하는 방식 자체를 유연하게 설계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소위 '문제 직원'이라 불리던 사람에게서도 예상치 못한 가능성이 열린다. 결국 '문제 직원'이라는 말은 조직이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가장 손쉬운 언어다.
갤럽 2025 보고서는 이 점을 명확히 경고한다.
"Manager engagement affects team engagement, which affects productivity. Business performance — and ultimately GDP growth — is at risk if executive leaders do not address manager breakdown."_ "관리자의 몰입도는 팀의 몰입도에, 팀의 몰입도는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경영진이 관리자의 붕괴에 대응하지 않으면, 사업 성과와 궁극적으로 GDP 성장 자체가 위험에 처한다." — <Gallup,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2025 Report>
누군가를 탓하는 데 쓰는 에너지를,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는 데 쓰는 것.
소통 구조를 점검하고, 평가 시스템을 재설계하고, 관리자에게 코칭 역량을 길러주는 것.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는 조직만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