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에서 쓴 3.1절 단상

동굴에서 광장으로, 한국인의 부(富) 지형이 흔들린다

아파트 한 채가 인생의 등급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평수가 곧 서열이었고, 재건축 기대감이 인간관계를 갈랐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옆 단지 사람과는 다른 세계 사람처럼 지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딱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3월 1일이다. 107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리는 삼성동 코엑스에 와 있다. 공교롭게도 이곳은 대한민국 부동산 철옹성의 한복판, 강남이다. 독립을 외치던 함성이 울렸을 거리와, 아파트 평수로 사람을 가늠하는 현실이 같은 좌표 위에 겹쳐 있다.


1919년의 사람들이 독립의 열망을 품고 신분과 계급의 동굴에서 걸어 나왔듯,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동굴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철학 교과서에만 있지 않다. 벽에 비친 그림자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는, 사실 한국 부동산 시장의 지난 30년을 꽤 정확하게 묘사한다.


학벌과 지역과 아파트 브랜드로 나뉜 동굴들. 그 안에서 각자의 그림자를 붙들고 살아왔다. 세계 30개국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부동산 소유에 매우 집착하는가?"라는 질문에 동의한 비율이 한국인은 67%로 미국인(25%), 일본인(26%), 영국인(30%)을 압도적으로 앞질렀다. 이 숫자 하나가 우리 사회의 지형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지형의 정점이 바로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다.


그런데 2025년부터, 어떤 균열이 발생됐다.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부동산 시장에 연달아 강수를 뒀다. 6월 27일 수도권 주담대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하고, 9월에는 2030년까지 수도권 135만 호 착공 계획을 발표했으며, 10월에는 서울 25개 자치구 전체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는 삼중 규제를 선언했다.


역대 진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모두 합한 것보다 강력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금보다 대출과 공급을 먼저 건드리는 방식은 이전 정부와 달랐다. 2026년 2월 현재,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5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상승폭은 2주 연속 축소되며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완벽한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방향은 틀어지기 시작했다.


주식시장 쪽은 수치가 더 선명하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코스피 5000'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취임 후 상법 개정 추진, 주가조작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밀어붙였고, 뉴욕증권거래소를 직접 찾아가 월가 투자자들에게 한국 시장의 구조 개혁을 약속했다. 결과는 수치로 돌아왔다.


2026년 2월 25일, 코스피는 6000선을 돌파했다. 2025년 연초 대비 76% 급등한 데 이어, 2026년 들어서도 추가 상승을 이어가며 역대 가장 강력한 상승 흐름을 기록하고 있다.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2026년 1분기에만 20조 원 이상의 자사주가 소각됐다.


SK하이닉스(12조 2,400억 원), 삼성물산(2조 3,266억 원), 신한지주(1조 3,000억 원) 등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지수 상승이 아니다. 2024년 말 기준 국내 개인 주식 투자자 수는 1,423만 명으로, 대한민국 가구 수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 1,400만 명이 이전과 다른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는 게 핵심이다. 부동산 외에는 믿을 투자처가 없다는 인식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직접 말한 것처럼, "자본시장의 투자 매력이 부동산시장보다 더 커지는 경제체질로의 변화"가 정책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무서운 이유가 뭔가를 자주 묻는다. 말이 거칠어서가 아니다. 정치적 계산이 빠르기 때문만도 아니다. 1,400만 주식 투자자의 욕망이 어디를 향하는지 정확히 읽고, 그 흐름을 국가 경제 구조 개편과 정밀하게 연결시키는 설계 능력 때문이다. 개인의 이익 추구와 자본시장 선진화를 같은 방향으로 정렬시키는 것, 그게 쉬워 보여도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2025년 연간 서울 아파트값은 13.49% 상승했고, 2025년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사상 처음으로 15억 원을 넘어섰다. 강력한 대출 규제가 실수요자까지 옥죄는 부작용이 지적됐고, 초강력 대출규제로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10월 8,495건에서 11월 3,265건으로 61.6% 급감했지만,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강남지역과 한강변 일대에서는 신고가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 상승 배경에는 AI 슈퍼사이클로 인한 반도체 수혜라는 글로벌 변수도 동시에 작용했다. 정책 공로만 이야기하는 건 정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구조적인 변화의 기류는 분명히 감지된다. 아파트 평수보다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노후를 더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다는 인식이 서서히 퍼지는 것, 이것은 정책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대와 경험이 달라진 결과이기도 하다.


코엑스 바깥으로 나오면 강남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유리 커튼월 너머로 보이는 저 아파트 단지들은 여전히 위풍당당하다.


동굴 밖으로 나오는 일은 기대만큼 선명하지 않다. 눈부심이 있고, 바람도 분다. 규제는 시장을 때로 혼란에 빠뜨리고, 개혁은 언제나 이해관계자의 저항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107년 전 그날도, 광장으로 걸어 나온 사람들은 결과를 장담하지 못했다. 그냥 나왔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완성된 전환이 아니라, 진행 중인 실험이다. 그 실험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앞으로 2년이 더 정확하게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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