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째 이 나라 수험생들의 선택지는 같았다.
잘하면 의대나 법대, 그다음이 공대였다. 이공계는 재능을 바쳐도 보상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인식이 깊이 박혀 있었으나 그게 지금 흔들리고 있다.
SK하이닉스가 2025년 한 해 매출 97조 원, 영업이익 47조 원이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노사 합의에 따라 이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풀었다. 지급률은 기본급의 2,964%. 연봉 1억 원인 직원이 성과급으로만 1억 4,820만 원을 받은 셈이다. 1인당 평균으로 따지면 약 1억 4,000만 원.
숫자만 놓고 보면 병·의원 근무 의사 평균 연봉(3억 원대)에 성과급을 합산한 총급여가 맞먹거나 넘어서는 직군이 처음 생겨난 해다.
이 결과가 하루아침에 나온 건 아니다. 2021년 성과급 기준을 놓고 노사 갈등이 격화됐을 때, 최태원 회장은 자신이 받은 연봉 30억 원을 전액 반납했다. 그리고 2024년, 영업이익 연동 방식으로 성과급 기준을 바꾸고 상한선을 없앴다. 어려울 때 버티고, 잘 될 때 확실히 나눈다는 원칙을 구조로 만든 것이다. HBM이 터졌고, 구조가 작동했다.
파장은 빠르게 퍼졌다. SK하이닉스는 인크루트 조사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처음 올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응답자의 3분의 2가 '만족스러운 급여와 보상 제도'를 꼽았다. 삼성전자 계약학과가 있는 대학 학생들조차 7대 3의 비율로 SK하이닉스 취업을 선호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 직원들도 움직였다. 삼성그룹 초기업노조는 4개월 만에 조합원을 9배 늘렸다. 이들의 요구는 명확하다. SK하이닉스처럼 영업이익 기준으로 성과급을 달라는 것이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교섭단은 두 회사가 동일하게 영업이익 100조 원을 달성할 경우, 현행 제도 아래에서 삼성전자 직원 성과급은 3,800만 원에 그치는 반면 SK하이닉스 직원은 2억 9,500만 원을 받게 된다고 추산했다. 약 8배 차이다. 사측이 공인한 수치는 아니지만, 이 숫자가 노조 가입을 9배 폭증시킨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은 실재했다. 같은 반도체 엔지니어가, 같은 나라에서, 어느 회사 배지를 달았느냐에 따라 이만큼 벌어진다.
이걸 노사 갈등으로만 읽으면 놓치는 게 있다. 엔비디아는 연봉 4억 원 수준과 주식 보상을 조건으로 한국의 HBM 전문가를 공개 모집 중이고, 일론 머스크는 직접 한국 AI 칩 엔지니어 채용에 나섰다. 판이 이미 글로벌이다. 국내에 남을 이유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사람은 떠난다.
증권가 전망대로 올해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이 142조 원에 달한다면, 1인당 성과급은 단순 계산으로 4억 원을 넘긴다. 의사 평균 연봉을 훌쩍 넘는 총급여가 엔지니어에게 현실이 되는 해가 코앞이다. 수험생들이 이 숫자를 모를 리 없다.
삼성전자가 이 압력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한 기업의 노사 협상이 아니다. 공대를 선택한 사람이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드느냐의 문제다. 엔지니어가 자신의 기여를 숫자로 돌려받는 구조가 정착되어야, 다음 세대가 다시 공대를 택한다.
지금이 그 분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