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운반선 이야기를 할 때 보통 수주 척수부터 꺼낸다.
몇 척, 얼마짜리.
지도를 펼쳐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카타르 라스라판에서 한국까지와 미국 사빈 패스에서 파나마운하를 통과해 오는 거리는 수천 킬로미터 차이가 난다. 파나마운하마저 막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야 한다면 그 격차는 배 이상으로 벌어진다. 같은 LNG를 받는데, 출발지에 따라 항해 거리가 완전히 달라지는 구조다.
거리가 늘어난다는 건 운송시간문제가 아니다. 같은 물량을 같은 속도로 운반하려면 더 많은 선박이 필요하다. 해운업에서 '톤마일이 길어진다'는 표현이 쓰이는 이유다. 수요가 느는 게 아니라 방정식 자체가 바뀐다. 그리고 그 결과로 LNG 운반선 발주가 구조적으로 늘어난다.
2016년 파나마운하 확장으로 통과 가능 선박의 폭이 기존 33.5m에서 49m로 넓어졌다. 이후 LNG운반선 기준으로 약 92%가 운하를 통과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카타르 국영 해운사 나킬라트(Nakilat)의 선단을 보면 얘기가 다시 복잡해진다. 나킬라트는 약 70척의 LNG운반선을 운용하는데, 이 중 31척은 Q-Flex(폭 50m), 14척은 Q-Max(폭 53.8m)급 초대형 선박이다. 확장된 파나마운하조차 통과할 수 없는 크기다. 카타르에서 한국, 일본, 중국으로 LNG를 실어 나르는 이 선단은 파나마운하를 포기하고 희망봉을 돌아야 한다. 이 거리의 격차가 LNG 운반선 수요의 실질적 배경이다.
파나마운하 확장에는 일본계 자금이 들어갔다. JBIC(일본국제협력은행)는 확장 공사에 8억 달러를 대출했고, 일본 공공기관들은 2012년 이후 전 세계 LNG 수출시설에 약 400억 달러를 지원했다. 에너지 안보 확보와 자국 기업의 LNG 밸류체인 장악이 목적이었다. 돈을 댄 쪽은 일본이었다. 그리고 그 운하를 통해 가장 많은 LNG 운반선을 수주하고 건조한 쪽은 한국이다.
여기에 대만이라는 변수가 더해진다.
2016년 집권한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는 2025년까지 원전을 전부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에너지 구성을 LNG 50%, 석탄 30%, 재생에너지 20%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이었다. 2025년 5월 17일 자정, 마안산 2호기가 가동을 멈추면서 대만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탈원전을 완수한 나라가 됐다.
탈원전은 완수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빈자리를 채워야 할 재생에너지가 따라오지 못했다. 정부가 약속한 20% 목표는 2024년 기준 12% 수준에 머물렀다. 빠진 발전량은 LNG가 채웠다. 탈원전을 했더니 화석연료 의존도가 오히려 올라갔다. 대만은 에너지의 96%를 수입에 의존하는 섬이다. LNG는 기화 특성 탓에 장기 보관이 어렵고, 법정 비축 기준은 11일치다.
2026년 3월, 그 시나리오가 실제로 왔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카타르에너지가 라스라 판 LNG 수출 중단을 선언했다. 카타르 LNG의 80% 이상이 아시아로 향하던 물량이었다. 대만은 즉각적인 공급 절벽에 직면했다.
TSMC 한 회사가 2023년 기준 대만 전체 전력의 약 8.9%를 사용했다. 2030년에는 그 비중이 20%대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전력 소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세계 최첨단 칩 생산의 핵심 거점이, 전력을 만들 연료를 11일 치 비축하고 있는 구조다.
민심은 이미 돌아섰다. 2025년 8월 23일 마안산 원전 재가동을 묻는 국민투표법상 찬성표가 전체 등록 유권자(약 2,000만 명)의 25%, 즉 500만 표를 넘어야 가결되는 요건에 미달해 부결됐다. 실제 찬성표는 434만여 표로, 기준선까지 66만 표가 부족했다. 대만 총리는 재가동에 안전성 재검토만 최소 3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탈원전 기간 동안 원자력 전문 인력 상당수가 해외로 이직한 탓이다. 돌리기로 결정해도 바로 돌릴 수 없다.
결국 대만은 당분간 LNG 의존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LNG 운반선 수요로 그대로 이어진다. 미국발 LNG 수출이 확대될수록 톤마일은 더 길어진다. 대만의 LNG 의존이 깊어질수록 그 방정식 안에서 한국 조선업이 차지하는 공간도 함께 넓어진다.
일본이 댄 돈,
대만이 늘린 수요,
한국이 짓는 배.
지도를 펼쳐놓고 거리를 재는 것.
그게 장기 계획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