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간, 다른 속도 — 승진이 갈라놓는 것들

연봉은 생존이고, 승진은 위치다.

직장인에게 연봉과 승진은 거의 전부다.

이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인사 시즌의 긴장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연봉은 생존의 문제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곧 내 삶의 반경을 결정한다.

2025년 기준 한국 직장인의 평균 연봉 인상률은 3% 안팎. 인사담당자의 45%가 1~3%대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직장인 응답자의 41.6%는 적어도 10% 이상을 기대한다고 답했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거리가 이 정도다. 그 간극 속에서 사람들은 승진이라는 다른 줄에 매달린다.


승진은 단순한 직급 상승이 아니다.

조직 안에서의 위상, 관계, 그리고 힘의 방향이 바뀐다.

같은 말을 해도 과장이 하면 의견이고, 부장이 하면 방침이 된다. 회의실에서의 발언권, 프로젝트 배분의 우선순위, 심지어 점심 자리의 분위기까지 —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이 직급 한 칸에 달려 있다.


문제는 이거다.

후배가 나보다 먼저 승진했을 때. 혹은 동시에 승진했을 때.

그리고 그 이유가 '내가 부족해서'라고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을 때.


그때의 감정은 좌절이라기보다 치욕에 가깝다.

응용심리학자 황준철은 이런 상황에서의 복잡한 감정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미안한데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나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참 복잡한 감정인 거죠." 단순한 질투가 아니다. 나의 시간과 노력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회사 안에서의 시간은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누군가는 같은 자리를 몇 년씩 맴돈다. 누군가는 멈춤 없이 통과한다. 경력 5년 미만 공무원의 조기 퇴직자 수가 2019년 6,663명에서 2022년 13,321명으로 두 배가 된 것도, 결국 이 '시간의 불공정'과 무관하지 않다. 같은 해를 보내고도 어떤 사람은 한 칸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제자리이고, 어떤 사람은 아예 조직을 떠나는 것이다.


승진을 하고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너무 늦게 와버린 인정은 기쁨보다 허탈감을 먼저 안긴다.

한경비즈니스 연재 칼럼 「안주연의 다시, 연결」 (2023.1.5)에 실린 독자 상담 편지의 사연 중 대기업에서 16년을 근무하다 승진 누락을 경험한 직장인은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무방비 상태로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 이 문장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후배들이 더 이상 뒤에 있지 않고, 내가 서 있었어야 할 자리까지 치고 올라오는 과정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다.


커리어 코치 Deborah Brown-Volkman은 이런 상황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다.


"When you're trying to find out what happened, first look inward. Many times people know why they didn't get a promotion." — Deborah Brown-Volkman, Career Coach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라. 대부분의 사람은 왜 승진하지 못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안다고 해서 감정이 정리되는 건 아니다.

회사의 구조적 문제, 부서 TO, 타이밍 — 이 모든 것이 '내 탓이 아님'을 증명해 주지만, 마음은 그렇게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후배를 100% 따뜻한 마음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들. 그 좁은 마음을 또 한 번 들여다보게 되는 사람들. 이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이라는 구조가 만들어낸 감정의 찌꺼기다.


흥미로운 건, 이제 승진 자체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2025년 19~36세 직장인 8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리더 역할을 맡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는 응답이 47.3%로, 불안하다는 응답(22.1%)의 두 배를 넘었다. '리더 포비아'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한국고용노동교육원 전이영 교수의 분석이 날카롭다.

"관리직은 제한이 있다 보니, 내가 승진을 하면 그만큼 더 빨리 나가야 될 것 같은 두려움을 갖는 거죠. 오래 붙어 있으려면 승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

승진이 성공의 사다리가 아니라, 퇴출의 시계를 앞당기는 장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영국 인사 전문 기업 로버트 월터스의 조사에서도 Z세대 직장인의 52%가 관리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스트레스는 많은데 보상이 크지 않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잡코리아가 MZ세대 직장인 1,11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4.8%가 '임원까지 승진할 생각이 없다'라고 답했고, 그 이유의 압도적 1위는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가 부담스러워서'(43.6%)였다.


승진을 원하는 사람은 승진하지 못해 닳아가고, 승진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그 구조 자체에 지쳐 있다. 어느 쪽이든 마음이 편한 사람은 드물다.


2025년 직장은 이런 모습이다.

Psychology Today는 2024년 연말 리뷰에서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를 전략적 우선순위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진단했다. 직무소진(burn-out)은 이미 오래된 화두지만, 최근에는 '토스트아웃(toaste-out)'이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확산되고 있다. 겉으로는 일을 해내고 있지만, 내적 의욕과 에너지가 소진되어 가는 상태. SNS에서는 갈색빛 토스트 사진과 함께 "지금 토스트아웃 상태다, 방치하면 번아웃까지 간다"는 글들이 공유되고 있다.


"Addressing mental health is no longer just a moral obligation, it is a strategic priority."
— Psychology Today, "2024 Year in Review: Mental Health in the Workplace" (Dec 2024)
"정신건강을 다루는 것은 더 이상 도덕적 의무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전략적 우선순위다."


직장생활이란, 결국 노력의 총합이 아니라 운과 구조, 그리고 타이밍 앞에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닳아가는지를 조용히 체감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마거릿 미첼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이렇게 썼다.


"Life's under no obligation to give us what we expect. We take what we get and are thankful it's no worse than it is." — Margaret Mitchell, Gone with the Wind (1936)_ "인생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을 줄 의무가 없다. 우리는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그보다 나쁘지 않은 것에 감사할 뿐이다."


감사하라. 정말로 그런가. 적어도 인사 발표 직후의 사무실에서, 그 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을 쓰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드는 건, 닳아가는 마음을 붙잡는 것도 결국 자기 몫이라는 것이다. 회사가 해주지 않는다. 구조가 바뀌길 기다리면 너무 늦는다. 그래서 이 씁쓸함을 느끼는 사람에게,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가장 먼저 알아줘야 할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인사 발표 게시판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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