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다르지만~
사시 부활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정부가 로스쿨과 별개로 연간 50~150명의 법조인을 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청와대는 즉각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법학교수회는 환영 성명을 냈고, 로스쿨 출신 변호사 단체는 중단을 촉구했다.
어제오늘 법조계가 시끄럽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나는 사시 부활에 찬성하는 편이다.
다만 이유는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 변호사가 되는 길은 딱 하나다. 학사학위를 따고, LEET를 치르고, 인가된 로스쿨 25개 중 하나에 합격하고, 3년을 다녀 석사를 받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순서도, 예외도, 우회로도 없다.
영어권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모두 마쳤어도 국내 영어시험 성적은 별도로 제출해야 한다. 독일어나 일본어처럼 법학에서 무게감 있는 외국어는 대체가 안 된다.
외국 변호사 자격은 입학 요건이나 시험 응시 자격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변리사나 세무사처럼 관련 자격을 가졌어도 지재권법이나 조세법을 면제받는 일 따위는 없다.
이걸 제도 설계라고 부르기가 좀 민망하다.
학비 부담 문제도 실재한다. 2025학년도 기준 전국 25개 로스쿨의 연간 평균 수업료는 약 1,495만 원이다. 사립대는 평균 1,755만 원 수준이다. 입학금까지 합산하면 첫 해 부담은 더 크다. 장학금 제도가 잘 설계되어 있다고 해도 부담때문에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것도 존재한다.
서울대 로스쿨을 중심으로 스펙·학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도입 당시의 취지가 이미 많이 흔들렸다는 말이 나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더 불편한 건 그 너머에 있다.
경로가 하나뿐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다.
비단 변호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의사, 교사, 대학 입시등. 한국 사회의 전문직 진입 제도는 예외 없이 단일 경로를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복수의 경로가 생기면 불공정하다고 느끼거나, 제도 간 서열이 생긴다고 불안해한다. 수시와 정시를 함께 두면 '수시충'이라는 멸칭이 등장하고, 정시가 진짜이고 수시는 편법이라는 인식이 퍼진다.
공정의 기준을 '숫자로 딱 떨어지느냐'로 환원하다 보니, 수치화하기 어려운 역량은 억지로 점수로 만들고, 반대로 불투명하게 선발하면서도 기준표만 맞으면 문제없다고 여기는 기묘한 문화가 생겨난다.
이재명 대통령은 로스쿨 제도에 대해 "현행 법조인 양성 경로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실력이 되면 로스쿨을 나오지 않아도 검증을 통해 변호사 자격을 줄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 바 있다.
과장된 측면이 있더라도, 진입 경로가 하나뿐일 때 그 경로를 장악한 집단이 자연스럽게 문지기가 된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일본은 2004년 로스쿨을 도입하면서도 법과대학을 존치시켰고, 2011년에는 로스쿨을 거치지 않아도 예비시험 합격만으로 사법시험 응시 자격을 주는 제도를 신설했다.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예비시험 도입 이후 명문대 재학생들이 로스쿨 진학 대신 예비시험 준비에 몰리는 현상이 실제로 나타났고, 로스쿨 지원자는 줄고 예비시험 응시자는 늘어 2014년부터 예비시험 응시자가 로스쿨 지원자 수를 앞질렀다.
그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도 복수 경로를 유지하는 이유는, 경로가 하나인 사회가 결국 더 큰 비용을 치른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 아닐까.
사시를 부활시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이 아니다. 제도 하나를 바꾼다고 구조가 바뀌진 않는다. 다만 이번 논쟁이 '사시냐 로스쿨이냐'는 이분법에 갇히는 건 아쉽다. 더 물어야 할 건 따로 있다. 왜 우리 사회는 단 하나의 길만 허용하는 방식을 공정이라고 부르는 걸까.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어느 쪽 제도가 이기든 같은 논쟁이 또 반복될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 논쟁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모르겠다. 예전엔 사시 존치 시위도 있었고, 법조계가 들끓었다.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다. 변호사 시장이 이렇게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데, 사시까지 뚫어서 변호사가 된들 뭐가 달라지나. 젊은 사람들이 과연 그 길에 뛰어들까. 제도 논쟁보다 시장 현실이 훨씬 빠르게 답을 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