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밥 뚜껑을 열면 보이는 것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의 대담 프로그램 '신과대화'에 개그맨 고명환이 출연한 편을 보았다. 백종원 이야기를 철학적 관점에서 풀어간 것이 흥미로웠다.


백종원이 자기 가맹점 짜장밥을 몰래 포장해서 먹었다. 뚜껑을 열더니 "색깔이 왜 이렇게 연하지?" 했다가, 한 입 먹고는 "왜 이리 짜?" 했다. 소스는 두 스푼을 한 스푼으로 줄이고, 싱거우니까 간장을 넣은 것이다.


고명환이 이 장면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 가맹점주를 탓하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경기가 나쁘고, 원가를 줄이고 싶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방법이 거기밖에 없는 것이다. 시선이 물건에 머물러 있으면 어디서 비용을 아낄까 가 전부다. 그 시선으로는 불경기를 버티는 방법이 소스 두 스푼을 한 스푼으로 줄이는 것뿐이다.


고명환이 꺼낸 이야기는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의 문명론이었다. 인간의 문명이 물건, 제도, 철학의 세 층위로 이루어진다는 것.


물건만 보는 나라는 후진국, 제도까지 보면 중진국, 철학의 세계에 도달하면 선진국이라는 논리다.


개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백종원은 1993년 원조쌈밥집으로 시작해 1994년 더본코리아 법인을 설립했고, 현재 20여 개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기업을 만들었다. 물건 하나에서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낸 궤적이 그것이다.


그런데 백종원은 정말 철학의 단계에 있는가.


가맹점마다 맛이 다르다는 이른바 '점바점' 문제가 심각해지자 백종원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사 홍콩반점 가맹점을 직접 점검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내가 내 걸 스스로 디스해야 하네"라고 말하며 탄 달걀이 든 짜장밥, 불어버린 면, 제멋대로 변형된 레시피를 하나씩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고명환이 대담에서 말한 "기업이 커지면 제도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고 제품에 변질이 온다"는 경고가 정확히 백종원에게 적용되는 셈이다.


백종원은 철학의 완성형이 아니라, 제도를 만들었으나 철학을 잃어가는 중인 현재진행형 사례에 더 가깝다.


나이키도 다시 봐야 한다. 광고에는 제품 설명이 없다. 새벽 4시에 운동화 끈을 묶고 뛰어나가는 사람, 마지막 한 발을 버티는 사람을 보여준다. 철학의 언어로 말한다. 그런데 그 철학은 브랜드 충성도를 높여 더 비싼 신발을 팔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나이키의 노동 환경 논란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철학을 말하되 철학을 살지 않는 구조, 그것이 나이키가 오랫동안 안고 온 모순이다.


스티브 잡스는 어떤가. 2010년, 애플의 주요 생산 협력사인 폭스콘 공장에서 18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했고 14명이 사망했다. 17세에서 25세 사이, 모두 농촌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그해 잡스는 관련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폭스콘에는 식당, 극장, 병원, 수영장까지 있다. 노동착취 공장이 아니다." 그는 생전에 폭스콘 공장을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사용자에게 아름다운 경험을 주겠다는 철학은 그 경험을 만들어낸 손들에게는 닿지 않았다. 철학이 선택적으로 적용된 것이다.


자신이 마주하는 세계에는 철학이 있고, 시선 밖의 세계에는 없었다.


여기서 고명환의 이야기가 다시 살아난다. 그의 대담의 진짜 핵심은 잡스도, 백종원도, 나이키도 아니었다.


물건, 제도, 철학의 3층 구조는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철학을 만드는 것이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빼놓으면 이야기가 너무 깔끔해진다.


불완전한 인간이 세운 제도는 그 인간이 사라지거나, 욕망이 커지거나, 시대가 바뀌면 흔들린다. 제도 안에는 그것을 설계한 사람의 한계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라 불리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특정 시대, 특정 인간의 시선이 만든 산물이다. 영원히 단단한 철학은 없다.


그렇다면 결국 무용한 이야기인가.


대담 후반부에 고명환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꺼냈다. 만원밖에 없고 가족 쌀 살 돈도 없는 사람이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봤다. 그 만원 중 3천 원을 떼어주고 싶다. 막상 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줬다면, 그 순간 이미 철학 정신의 세계를 경험한 것이라고 했다.


그건 성공과 무관하다. 누가 보지 않아도 되고, 아무 시스템도 필요 없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부처가 보시하라 한 것도, 예수가 이웃을 사랑하라 한 것도, 받는 사람을 위한 말이 아니라는 게 고명환의 해석이었다.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철학에 도달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드는 모든 제도와 철학은 시대의 변화 앞에서 흔들린다.


잡스의 철학은 폭스콘 공장 담장을 넘지 못했고, 백종원의 시스템은 짜장 소스 한 스푼 앞에서 무너졌다. 그러나 그 방향을 향해 시선을 조금씩 올리는 일, 그 자체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고전 문학을 읽는 동안만큼은 다른 차원을 경험한다고 고명환은 말했다. 그 경험이 조금씩 쌓인다고. 짜장밥 소스를 줄이는 대신 이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를 먼저 묻는 것.


직장을 다니든 가게를 하든 결국 같은 질문이다. 지금 내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그리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올라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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