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파견 요구와 한 대통령의 기억
이라크 파병 논란이 한창이던 시절, MBC 100분 토론 방청석에서 한 시청자가 대통령에게 물었다.
"내가 아는 대통령은 이런 상황이라면 이라크 파병을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왜 하느냐"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질문이 날카로웠고, 답은 섣불리 꺼낼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토론이 마무리될 무렵, 그는 진행자 손석희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미안하지만, 아까 저 선생님의 질문에 다시 답변해도 되겠느냐"라고.
오래 준비된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안에는 긴 고뇌와, 끝내 설명되지 못했던 진심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는 한신(韓信) 이야기를 꺼냈다. 훗날 한나라 건국의 결정적 공신이 된 명장이지만, 젊은 시절의 한신은 동네 불량배에게 수모를 당했다.
"칼로 찌르든가, 아니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던져진 그 말 앞에서 한신은 분을 삭이며 무릎을 꿇었다. 구경꾼들은 비웃었고, 그는 묵묵히 기어 지나갔다.
사람들은 이 일화를 과하지욕(跨下之辱)이라 부른다. 큰 뜻을 품은 사람은 당장의 치욕을 감내할 줄 안다는 뜻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고사를 통해, 이라크 파병 역시 자존심이 상하고 비판이 따르는 결정이었지만 더 큰 국익과 먼 미래를 위해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논리보다는 비유를 택했고, 변명보다는 고뇌를 꺼내놓았다. 그리고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대통령으로서 잘 못해서 미안하다."
손석희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했다고 했다. 말투, 표정, 논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다가오던 그 순간. 결정을 방어하는 대신, 그 무게를 온전히 지고 서 있던 태도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비슷한 질문이 다시 이 땅 위에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14일 한국을 포함한 중국·일본·프랑스·영국 5개국에 호르무즈 해협으로 군함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 직접 해협 개방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였다.
한국이 지목된 이유는 분명하다. 국내 원유 수입량의 대부분이 그 좁은 해협을 통과한다. 현재
청해부대는 인근 아덴만에 구축함 1척과 약 300명의 병력을 두고 활동 중이며, 2020년에도 미국의 압박 속에 청해부대 작전 범위를 페르시아만까지 넓힌 전례가 있다.
거절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하나씩 맞물려 있는 구도다. 국내 정치적 반발이 예상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교전이 벌어지는 해역으로 우리 군을 보내는 일은, 파병 명분과 실익을 둘러싼 논쟁을 다시 불러올 것이다. 이라크 때와 구조가 다르지 않다.
결국 이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은 지도자인 대통령이다. 동맹의 요구와 국내 여론 사이에서, 에너지 안보와 군사적 위험 사이에서, 당장의 비판과 먼 미래의 국익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어느 방향을 택하든 상처가 따른다.
그게 그 자리의 무게다.
오늘의 한국은 그때보다 훨씬 강한 나라가 됐다. 군사력도, 경제력도, 외교적 자율성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2003년처럼 선택지 없이 끌려가야 하는 처지는 아니다. 그러나 힘이 커졌다는 건, 선택의 무게도 함께 커졌다는 뜻이다.
힘이 있는데 어떻게 쓸 것인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날 밤 방청석 앞에서 보여준 것은 화려한 논리가 아니었다. 당장의 이익보다 먼 미래를 생각하고, 모욕을 견디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으려 했던 태도. 그리고 자신의 결정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려 한 자세. 우리가 지도자에게 기대해야 할 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다만 이번에는 한신처럼 기어가야 하는 상황인지, 아니면 당당히 서서 말할 수 있는 상황인지부터 정확히 봐야 한다.
그것을 구별하는 눈이 곧 지도자의 자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