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드러내면 뒤에서 이야기가 나온다.
실력을 드러내면 시기와 질투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와 실력을 드러낸다.
그게 곧 진정성으로 비치는 부분이니까.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나는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솔직한 사람이야."라는 말로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내게 애정이 없는 존재다. 솔직함을 방패 삼아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도 그것을 덕목인 양 내세우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감각이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
말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말의 방향과 온도가 사람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솔직함은 거침없이 내뱉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말을 언제 꺼내야 하는지 아는 데 있다.
내게 정말 애정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그 말이 하고 싶어도, 내가 그 말을 듣고 상처받거나 아파할 것이 걱정되어서,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끝내 참고하지 않는다. 수십 년간 수천 쌍의 커플을 관찰한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관계를 무너뜨리는 가장 파괴적인 소통 방식으로 비판, 경멸, 방어, 담쌓기를 꼽았다. 그의 연구가 역설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은 하나다. 건강한 관계는 더 많이 말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을지 아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에서 "인간의 말은 마땅히 침묵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말은 소음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말이 많아질수록 말은 가벼워지고, 침묵이 깊어질수록 말은 무거워진다.
당나라 말기의 정치가 풍도(馮道)는 《설시(舌詩)》에 이렇게 적었다.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 —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
말이란 한번 내뱉으면 다시 담을 수 없다. 엎질러진 물이 그릇으로 돌아오지 않듯, 뱉어진 말은 상대의 가슴속에 남아 오래도록 자국을 낸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신언서판(身言書判), 즉 몸가짐, 말씨, 글씨, 판단력을 사람됨의 기준으로 삼았다. 말씨가 그 사람 자체였던 것이다.
근현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끝맺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언어의 한계에 대한 철학적 명제였지만, 인간관계에 그대로 닿아 있다.
내 감정의 솔직한 토로가 상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 순간, 침묵은 무능함이 아니라 성숙함이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끝내하지 않는 것, 그게 서로를 향한 애정의 증거다.
사랑은 때로 말이 아니라 침묵의 형태로 온다.
참아낸 말 한마디 속에 담긴 배려가, 백 마디 위로보다 깊이 상대의 마음에 닿는다.
관계의 깊이는 서로 얼마나 많은 말을 나눴느냐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말을 삼켰느냐로 측정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은 굳이 하지 않고 살기.
그것이 어른의 언어이고, 애정의 언어이며, 관계를 오래 가꾸는 사람들의 오래된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