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를 8강에서 마주한 한국의 현실은 냉혹했다.
이번 WBC에서 한국 투수진의 직구 평균 구속은 146.3km/h로 20개 참가국 중 18위였다. 도미니카공화국(154.8km/h)과 8km 넘게 차이 났다. 일본(152.1km/h), 대만(150.5km/h)에도 뒤졌다. 한국보다 느린 팀은 호주와 체코 뿐이었다.
경기 후 류지현 감독은 "한국 투수들의 구속이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학생 야구부터 차근차근 잘 만들어야 한다"라고 인정했다. KBO 리그에서도 각 구단의 국내 선발 자원은 사실상 2~3명 수준이다. 외국인 투수 2명이 1·2 선발을 맡고 나머지 로테이션과 중간계투는 사실상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구조다. 타자들은 이 구간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릴 수 있고, 국내 투수들은 그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진단이지만, 여기에 고교야구 배트 문제도 맞물려 있다고 본다.
한국은 2004년부터 고교야구에 나무배트를 도입했다. 본래 취지는 국제대회 적응과 투수 혹사 방지였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야구계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나무배트 환경에서는 웬만한 구속의 직구로도 타자를 제압할 수 있다. 투수들이 구속과 제구를 근본부터 끌어올려야 하는 동기가 약해진다. 반면 타자들은 나무배트로 장타를 내기 어려워지면서 손기술로 공을 맞히는 이른바 '똑딱이 타법'이 양산됐다.
제대로 된 강타자가 줄어드니 투수들의 성장 동기도 함께 떨어지는 악순환이다.
박용택 해설위원은 나무배트 사용이 '손장난', 즉 어떻게든 공을 맞히는 데만 집중하는 타격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만수 전 감독도 나무배트 환경에서 투수들이 예전처럼 힘을 기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우려를 밝혔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하나의 방향을 제안한다면 이렇다.
중·고교에서는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해 타자의 위협 수준을 높이고, 대학에서 나무배트로 전환해 프로 적응력을 키우는 단계적 구조다. 알루미늄 배트 환경에서는 투수가 타자를 제압하기 위해 구속과 제구 모두를 끌어올려야 한다. 대학에서 나무배트를 경험하면 프로 진출 전 실질적인 적응 과정도 거치게 된다.
물론 이 제안에 반론도 있다. 알루미늄 배트의 빠른 타구가 투수와 야수에게 부상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이 있고, 배트가 아니라 육성 시스템 전반의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느 쪽도 간단히 정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이 WBC에서 구속 20개국 중 18위로 나타나는 현실이 반복된다면, 현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피할 수 없다.
세계 야구는 구속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150km/h 중후반의 직구와 그에 버금가는 변화량의 변화구가 있어야 국제무대에서 통한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진단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이 인구 1,200만의 나라로 메이저리그의 10%를 공급하며 WBC 4경기에서 홈런 13개를 때려내는 동안, 한국 야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냉정하게 들여다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