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능동적 대북 전략 구상
2026년 2월 19일부터 25일까지 7일간 평양에서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9차 당대회는 한반도 정세의 구조적 전환점이 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당 총비서로 재추대됐고, 대회는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당 규약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대회 집행부 39명 가운데 대남 업무 담당 인사는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군인 대표 비중도 전 대회 408명에서 474명으로 16% 늘었다. 당대회 직후인 3월 22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가 소집되어 헌법 개정 문제가 다뤄질 예정이다.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의 법제화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 흐름은 2023년 12월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뒤 일관되게 이어져 온 결과다.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대남 기구 폐지, 모든 선전물에서 '민족'과 '통일' 표현의 삭제,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호칭 변경까지 각 단계는 우발적 조치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설계된 전략적 수순이었다.
북한이 이 노선을 선택한 배경에는 복합적인 국가이익 계산이 작동하고 있다.
첫째, 비핵화 협상의 틀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다.
북한의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 공고화와 그 전제 위에서의 북·미 군비통제 협상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기축으로 한 한국의 대북·대미 정책은 이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한국을 협상 구도에서 배제하고, 남·북·미 3자 프레임을 해체함으로써 북·미 직접 대화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둘째, 핵억제력 행사의 정당성 확보 문제다.
'우리 민족끼리' 논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남측을 향해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공언하는 것은 내부 모순을 안는다. 남북을 이질적 두 국가로 재정의함으로써 이 모순을 제거하고, 핵위협의 현실성을 높여 억제력의 실효를 극대화하려는 선택이다.
셋째, 흡수통일 공포와 체제 경쟁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려는 통치적 동기다.
통일 논리가 살아있는 한 체제 비교와 정보 유입은 내부 불안정 요인으로 작동한다. 두 국가 선언은 이 압박을 원천 차단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적대'라는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 노선의 실질은 전면 충돌보다 분리에 가깝다.
상호 관여를 거부하되 주권 침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구도다. 이를 남북 간 긴장의 증폭으로만 읽는 것은 절반만 맞다. 동시에 이것은 정전협정의 '미결 상태'를 이용한 모호성으로부터 탈피해, 국경선 기반의 분리된 안정을 추구하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북한은 전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도가 한국에 이롭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이 설계에 참여하지 못한 채 '주적 국가'로 법제화되면, 대북 정책의 근거 자체가 무력화된다.
현 정부가 밝힌 대북 3원칙 - 북한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 - 은 올바른 방향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북한의 적대적 프레이밍에 맞선 충분한 전략이 되기 어렵다.
우선, '비핵화 우선' 단일 프레임에서 벗어나 한반도 전략의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비핵화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이지만, 그것이 모든 대화와 관여의 선결 조건으로 작동하는 한 북한과의 어떤 접촉도 시작될 수 없다. 핵 문제와 남북 교류·협력, 인도주의 현안을 분리하여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복선 전략'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 구상의 국제화가 요구된다.
북한이 '두 국가' 논리로 한국을 협상에서 배제하려 할수록,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자 주도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협상이 재개되는 국면에서 한국이 관여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의 이해가 반영되지 않는 북·미 합의가 한반도 질서를 규정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셋째, 확장억제의 신뢰성 강화와 동시에 위기관리 채널을 복원해야 한다.
한·미 연합 억제력은 유지되어야 하지만, 억제력이 강해질수록 북한의 선제타격 유인도 커질 수 있다는 안보 딜레마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위기소통 창구 마련이 안보 전략의 일부여야 한다. 현재 남북 간에는 실질적인 직접 소통 채널이 전무하다. 정부 채널이 막혀있다면, 국제기구나 제3국을 통한 간접 경로라도 탐색해야 한다.
넷째, 인도주의 교류는 '적대적 두 국가' 프레임과 무관하게 지속돼야 한다.
이산가족 문제, 북한 내 취약계층 지원, 보건 협력 등은 정치적 조건을 전제하지 않고 추진할 수 있고, 추진해야 한다. 이는 도덕적 요청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관계 복원의 접점을 유지하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북·러 군사협력의 심화, 북·중·러 연대 강화,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북·미 대화 가능성,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 - 이 모든 변수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한국이 이 구도 안에서 수동적 관찰자로 머물 것인지, 능동적 행위자로 자리를 잡을 것인지는 지금의 전략 선택에 달려 있다.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의 법제화가 현실이 됐다고 해서 통일의 가능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접근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통일은 선언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다. 한반도 평화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인내 있는 과정이 지금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