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개천절, 그 성화의 경로

1946년 8월 15일, 서울에 봉화가 올랐다. 광복 1주년.

남산 꼭대기에서 타오른 그 불씨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전달했고, 백범 김구가 직접 점화했다.


그 불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대종교 총본사 천진전에서 채화된 것이었다. 대종교의 단애 윤세복 종사가 직접 채화하여 손기정에게 건넸고, 손기정은 이를 김구에게 전했다.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의 정신적 근거였던 대종교가, 광복된 땅 위에서 처음으로 민족의 불꽃을 밝힌 날이었다.


그해 음력 10월 3일, 개천절 아침이 밝자 이 성화는 다시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마니산 참성단. 대종교 총본사에서 열린 전수식을 거쳐, 마라톤 선수 함기용이 성화를 들고 강화도로 달렸다. 참성단에서 그 불을 받아 점화한 인물은 민족주의 사학자이자 대종교인이었던 민세 안재홍이었다. 봉화제에서 시작한 불씨가 민족의 성지에서 하늘을 향해 타오른 순간이었다.


광복 직후의 혼란 속에서 대종교가 주도한 이 행사의 의미는 단순한 종교 의례가 아니었다. 독립투쟁과 스포츠와 민족 종교가 한 자리에 얽힌 이 장면은, 일제강점기 35년을 견뎌낸 민족이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행위였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참성단은 1964년 7월 11일 사적 제136호로 지정되었다. 지정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 위상이 그 역사를 담기에 충분한가는 별개의 문제다. 숭례문이 국보 제1호로 지정된 것과 비교하면 말이다.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다'고 판단해 왔는지를 말해주는 지표가 아닐까? 조선시대의 문루와 단군 이래 수천 년의 제천 성소가 제도적으로 같은 무게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 문화재 인식의 맹점을 드러낸다.


성화는 그 이후로도 계속 타올랐다. 1955년 전국 체전의 성화 채화를 계기로 참성단의 제천의식이 개천대제라는 이름으로 부활되어 매년 양력 10월 3일 거행되고 있다.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우리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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