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명, 우리가 만든 것들
운동회가 시작되기 전, 초등학생들이 운동장 한가운데 모여 마이크 앞에 섰다.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들 조금만 놀게요. 감사합니다."
지난해 5월의 일이다. 아이들이 뛰기 전에 먼저 사과했다.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두려워서 말이다.
2025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0명이다. 2년 연속 소폭 반등했다고 한다. 2024년 일본은 1.15명이었다. 일본도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며 출생아 수가 처음으로 7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고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한국은 그 일본보다 0.4명이 낮다. OECD 평균이 1.5명대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의 저출생은 비교 대상조차 없는 구간에 혼자 서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집값, 사교육비, 불안정한 고용.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경제적 부담이 전부라면, 소득이 높을수록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전국에서 가장 잘사는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0.63명으로 전국 최저다. 돈이 생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경제 논리 너머에 문화의 문제가 있다.
문제는 경제 밖에 있다고 본다. 몸을 쓰지 않는 사회, 이성을 모르고 자라는 학교, 아이들이 뛰면 민원이 들어오는 도시.
이 세 가지가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가 0.80명이다.
서울 시민의 84%가 아파트에 산다. 층간소음이 이웃 간 언어가 된 지 오래다.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전국 교육청에 공식 접수된 학교 체육활동 소음 민원만 62건이다. 국민신문고를 통한 공식 집계가 그렇다는 것이고, 각 학교 문을 직접 두드린 민원은 그 몇 배를 훌쩍 넘을 것이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사전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공문을 보내고 소음 발생 시간대까지 알렸는데도 체육수업 중 주민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는 연락이 온다고. 그래서 요즘은 운동장 수업이 꺼려진다고 했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를 견디지 못하는 사회가 아이 낳는 것을 반긴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 중고등학교에는 부카츠(部活動)라는 방과 후 동아리 문화가 있다. 1968년 공식화됐고, 1972년에는 학교 내 클럽 설치가 의무화됐다.
야구, 축구, 유도, 검도, 수영, 육상.
의무가 아닌데도 중학생의 약 85%, 고등학생의 약 70%가 스스로 참여한다. 방과 후 운동장은 조용할 틈이 없다.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전환은 2007년부터다. 자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스포츠 입국 일본'이라는 보고서가 나왔고, 2011년 스포츠기본법 제정, 2015년 스포츠청 신설로 이어졌다.
생활체육과 엘리트 스포츠를 대립 구도로 보지 않았다. 저변이 넓어지면 재능이 올라오고, 그 재능이 다시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끌어당긴다. 오타니 쇼헤이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천재가 아니라, 그 구조가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러나 일본조차 2024년 합계출산율 1.15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운동장만으로 저출생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다만 한국은 그 일본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기반조차 없다.
2024년 기준 전국 고등학교 약 2,370개 중 야구부를 운영하는 학교는 약 100개다. 전체의 4%다. 나머지 96%의 아이들에게 방과 후 운동장은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었다. 몸을 쓰는 삶은 선수가 될 아이들의 몫으로 좁혀졌고, 그 자리를 학원이 채웠다.
교실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한국은 중고등학교 단계에서 남녀를 분리해 키우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나라다. 서울 고등학교의 80%가 남고 또는 여고다. 가장 예민하고 뜨거운 시절 6년을 이성 없이 보낸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에게 이성은 또래가 아니라 타자가 된다.
이상화하거나 불신하거나, 둘 중 하나다. 지금 한국 2030 남녀 갈등의 밑바닥에는 그 낯섦이 켜켜이 쌓여 있다. 서로를 충분히 겪어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됐다. 일본 청소년들은 부카츠에서 남녀가 함께 뛰고, 같은 교실에서 함께 앉는다. 저출생을 경제 문제로만 읽는 동안,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을 학교에서 지워버렸다.
신앙의 언어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 성경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하고, 꾸란은 자녀를 알라가 내린 축복으로 가르친다. 말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증거가 있다. 무슬림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평균 2.9명으로, 비무슬림 여성 평균 2.2명을 웃돈다. 믿음이 일상의 언어로 살아 있을 때 나오는 숫자다.
0.75명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숫자가 아니다. 아이들이 뛰면 민원이 들어오는 도시, 몸을 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 이성을 모르고 자라 서로를 낯설어하는 어른들, 아이 낳는 삶을 선택지 밖으로 밀어낸 문화. 이것들이 수십 년에 걸쳐 층층이 쌓인 결과다.
저출생 대책에 수십조를 쏟아붓는 동안, 아파트 단지 옆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지 못하고 있다. 숫자를 올리기 전에 먼저 바꿔야 할 것들이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도시, 남녀가 함께 부대끼며 자라는 학교, 아이 낳는 삶이 특별한 결심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는 문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운동회 전에 사과해야 하는 나라에서 저출생 반등을 기다리는 것은, 콘크리트 위에 씨앗을 뿌리고 싹이 트길 바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