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경복궁, 그리고 우리가 아직 끝내지 못한 일
어젯밤 광화문에서 아리랑이 울렸다. BTS가 경복궁 근정문을 걸어 나와 광화문 앞에 섰고, 전 세계 190개국이 그 장면을 지켜봤다.
거대 엔터테인먼트 자본과 넷플릭스가 만나 도심 한복판을 통제하고 만들어낸 공연이었다. 이것이 백범 김구가 백범일지에서 말한 문화의 힘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그럼에도 다양한 나라의 외국인들이 광화문 앞에서 한국 문화를 접하고 즐겼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런데 그 자리가 오늘의 광화문이 되기까지, 먼저 사라져야 할 것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경복궁은 참혹한 운명을 맞이했다. 일제는 전각들을 경매에 부쳐 민간에 팔아넘겼고, 궁궐 곳곳을 철저히 철거했다. 찬란했던 전각들이 있던 자리에는 황량한 빈터만 남았다. 단순한 훼손이 아니었다. 조선의 역사와 민족적 자존심을 물리적으로 지워버리는 행위였다.
총독부 청사의 입지는 일제의 계산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경복궁 근정전 앞에 버티고 서서 궁궐의 위용을 가로막았고, 광화문마저 강제로 뜯어 경복궁 동쪽으로 이전시켰다. 원래는 완전히 없애려 했으나 반대 여론에 밀려 옮기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 건물은 경복궁의 남북 중심축에서 동쪽으로 3.75도 어긋나게 지어졌다. 서울 시민들이 그 건물을 볼 때마다 느꼈던 답답함은 착각이 아니었다.
1945년 9월 9일,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미군 사령관 존 하지 중장 앞에서 항복 문서에 조인했다. 총독부 청사는 이후 미군정 청사로 활용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는 헌법 공포의 현장이 되었다. 6·25 전쟁 중에는 서울 수복을 기념해 태극기가 게양되기도 했다.
식민통치의 상징이던 공간이 새로운 국가 건설의 현장이 된 것이다. 해방 직후와 전쟁을 거치며 피폐해진 상황에서 새 청사를 지을 여력은 없었다. 총독부는 결국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1995년 광복 50주년, 경복궁 정중앙을 막고 서 있던 조선총독부 청사가 철거됐다. 단순한 건축물 해체가 아니었다. 그 철거가 있고 나서야 광화문 복원이 시작됐고, 복원이 진행되고 나서야 어제의 무대가 가능해졌다. 어제 BTS가 걸어 나온 그 길은, 누군가 먼저 지워낸 자리 위에 다시 세워진 공간이다. 청산이 없었다면 복원도 없었다.
광복 직후 여운형은 휘문중학교 운동장에 모인 군중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에 대하여 우리들의 아량을 보입시다. 세계문화 건설에 백두산 밑에서 자라난 우리 민족의 힘을 바칩시다."
승리의 자리에서 관용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안창호의 대공주의, 그리고 여운형의 이 한마디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독립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짓겠다는 의지였다.
그 의지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자리에서 30년 전의 실험 하나와 만나게 된다.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은 힙합과 헤비메탈에 태평소와 꽹과리를 뒤섞은 〈하여가〉를 들고 나왔다.
한국 전통 음악의 소리를 현대 대중음악에 처음 본격적으로 결합한 시도였다. 당시 사물놀이 국악인 김덕수가 직접 피처링에 참여했고, 라이브 공연에서는 장사익이 태평소를 불었다. 이듬해 3집에서는 통일과 민족 정서를 담은 〈발해를 꿈꾸며〉를 발표했다. 서태지는 이미 그때, 한국의 정서와 세계의 음악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무대 위에서 증명하고 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실험은 넷플릭스 190개국 생중계로 귀결됐다. 규모는 달라졌고 그 뒤에 선 자본의 무게도 달라졌다. 어제 BTS가 부른 첫 곡은 아리랑을 샘플링한 신곡이었고, 수만 명이 광화문 광장에서 아리랑을 떼창 했다. 필리핀에서 온 한 팬은 공연 전날 아리랑을 익혔다고 했다. 한이 무엇인지, 그 그리움과 회한의 정서가 무엇인지 따로 찾아봤다고도 했다.
그것이 아리랑 본래의 한과 정서를 담은 것인지, 아니면 한류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된 상품인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총독부 철거로 복원된 광화문 앞에서, 전통 민요의 이름을 단 앨범을 발표한 그룹이, 거대 플랫폼 자본의 중계망을 통해 전 세계에 한국의 정서를 내보내는 이 장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건물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이 남긴 질문은 아직 답을 기다린다. 교과서 속 서술, 지도 위의 지명, 오래된 제도의 뼈대. 일제의 흔적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깊숙이 박혀 있다. 경복궁 복원은 그래서 문화재 사업이 아니다. 자존을 물리적으로 세우는 일이다. 과거를 복원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어떤 기억을 선택하고 어떤 정체성 위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철거가 청산이었다면, 복원은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