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5년 전 사관이 남긴 지도자의 조건
세종실록 127권, 세종 32년 음력 2월 17일. 세종이 영응대군 집 동별궁에서 승하한 날짜로 실린 기사(記事)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의 사후에 편찬되는 방식을 취했다. 왕이 죽으면 실록청이 설치되고, 사관들이 남긴 사초와 각 관청 기록을 모아 편찬에 들어갔다. 세종실록은 세종 사후 4년여 만인 1454년에 완성됐다. 이 기사(記事)는 그 과정에서 사관들이 세종의 치세 전체를 갈무리하며 남긴 졸기(卒記), 즉 통치자에 대한 최후의 총평이다.
사관들은 그 날짜에 이런 말을 남겼다.
勵精圖治,終始如一,文武之政,靡不修擧,使臣以禮,納諫不違,民樂其生者,凡三十餘年。
힘써 정신차려 다스리기를 도모하기를 처음과 나중이 한결같아, 문(文)과 무(武)의 정치가 빠짐없이 잘 되었고, 신하를 부리기를 예도로써 하고, 간하는 말을 어기지 않았으며, 백성이 살아가기를 즐겨한 지 무릇 30여 년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 모든 게 들어 있다.
한결같음. 예우. 듣는 것. 그리고 백성이 삶을 즐긴다는 것.
정치철학서 수백 권을 읽어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지도자의 조건을 짚어낸 문장을 찾기 어렵다.
처음 말한 것을 끝까지 지키는 것,
아랫사람을 예로 대하는 것,
듣기 싫은 말을 막지 않는 것.
그 결과로 사람들이 자기 삶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
이 네 가지가 31년 치 치세 전체를 요약한 말이다.
575년이 지났다. 이 기준이 낡았는가.
오히려 반대다.
지금 우리가 지도자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정확히 여기 있다.
처음 말한 것을 지금도 지키는가.
반대 의견 앞에서 어떻게 하는가.
그 아래 사람들이 지금 삶을 즐기고 있는가.
사관은 이것을 태평성대라 불렀다.
거창한 치적이 아니었다.
한결같았고, 들었고, 백성이 웃으며 살았다는 것.
그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