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순국 116주기, '한국인 안응칠 소회'를 다시 읽다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날이다.
1910년 3월 26일, 뤼순감옥. 그 날로부터 116년이 지났다.
우리는 안중근을 기억할 때 하얼빈역을 떠올린다.
1909년 10월 26일, 권총 세 발.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졌고, 안중근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 장면은 강렬하고, 그래서 그 뒤를 잘 보지 않는다.
체포 열흘 뒤인 11월 6일, 뤼순감옥에 수감된 안중근은 연필을 들었다.
검찰관의 첫 심문이 있기도 전이었다.
오후 두 시 반. 그는 종이 한 장에 자신이 왜 방아쇠를 당겼는지를 썼다.
'한국인 안응칠 소회(所懷)'라는 제목의 그 글은 일본 외무성이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따로 정서한 극비 문건으로 남았다.
그 글의 첫 문장이 놀랍다.
"하늘이 사람을 내어 세상이 모두 형제가 되었다."
감옥 안에서, 방금 제국의 실력자를 죽이고 사형이 확실한 상황에서, 그가 꺼낸 첫 말이 형제였다. 적개심이 아니었다. 이념 선언도 아니었다. 그는 인간의 보편적 조건으로 글을 시작했다.
이어지는 문장들은 당대의 '문명론'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이 문명한 시대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홀로 탄식한다. 그가 말하는 진짜 문명은 잘난 이와 못난 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각자 타고난 성품을 지키고 제 땅에서 생업을 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이른바 고등 인물들이 의논하는 것은 경쟁이고, 연구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기계다. 동양 각지에서 대포 연기와 탄환이 끊이지 않는다.
안중근은 일본만을 겨냥하지 않았다. 그가 비판한 것은 제국주의 문명 그 자체였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팽창과 침략을 '발전'으로 포장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세계질서 전체가 그의 비판 대상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늙은 도적'이라 부른다. 천하대세를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잔혹한 정책으로 동양 전체를 멸망의 길로 이끈 자. 안중근에게 이토의 죄는 단순히 한국을 침략한 것이 아니었다. 동양 평화를 무너뜨린 죄였다.
그는 이후 옥중에서 쓴 미완의 논문 『동양평화론』에서 이 생각을 더 밀고 나갔다.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뤼순을 관리하고, 평화회의를 조직하고, 공용 화폐를 만들자는 구상.
사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소회의 마지막 문장은 짧고 담담하다.
"나는 생각다 못하여 하얼빈에서 총 한 방으로 만인이 보는 눈앞에서 늙은 도적 이토의 죄악을 성토하여 뜻있는 동양 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자기변명이 없다. 감상도 없다. 다만 이것이 내가 한 일이고, 이것이 그 이유라는 서술만 있다. 총을 쏜 사람의 말치고는 너무 조용하다. 그래서 오히려 묵직하게 남는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그로부터 40일 뒤인 3월 26일 순국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쓰고 싶었던 『동양평화론』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
일제가 사형을 서둘렀다. 그의 유해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총이 아니라 연필로 시작된 그 글을, 116년이 지난 오늘 다시 읽는다.
그는 감옥 안에서 문명을 묻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그 물음에 뭐라고 답하고 있는가.
<안중근의 '한국인 안응칠 소회'>
하늘이 사람을 내어 세상이 모두 형제가 되었다. 각각 자유를 지켜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가진 떳떳한 정이라.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의례히 문명한 시대라 일컫지마는 나는 홀로 그렇지 않는 것을 탄식한다. 무릇 문명이란 것은 동서양, 잘난이, 못난이, 남녀노소를 물을 것 없이 각각 천부의 성품을 지키고 도덕을 숭상하여 서로 다투는 마음이 없이 제 땅에서 편안히 생업을 즐기면서 같이 태평을 누리는 그것이라.
그런데 오늘의 시대는 그렇지 못하여 이른바 상등 사회의 고등 인물들은 의논한다는 것이 경쟁하는 것이요, 연구한다는 것이 사람 죽이는 기계라. 그래서 동서양 육대주에 대포 연기와 탄환 빗발이 끊일 날이 없으니 어찌 개탄할 일이 아닐 것이냐. 이제 동양 대세를 말하면 비참한 현상이 더욱 심하여 참으로 기록하기 어렵다. 이른바 이토 히로부미는 천하대세를 깊이 헤아려 알지 못하고 함부로 잔혹한 정책을 써서 동양 전체가 장차 멸망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슬프다. 천하대세를 멀리 걱정하는 청년들이 어찌 팔짱만 끼고 아무런 방책도 없이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을가 보냐. 그러므로 나는 생각다 못하여 하얼빈에서 총 한 방으로 만인이 보는 눈 앞에서 늙은 도적 이토의 죄악을 성토하여 뜻있는 동양 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