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전쟁 패턴을 분석하고 미사일 궤적을 예측하는 시대다. 그 기술력을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 학습에 써서 매장 추정 범위라도 좁혀보자. 발굴 허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범위를 좁히는 작업 자체가 외교적 명분이 된다.
그런데 그 전에, 냉정하게 돌아봐야 할 역사가 있다.
2005년 남북이 공동발굴에 합의했다. 이듬해 현지 조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2008년 막상 삽을 들었을 때 북한은 문서상 동의만 해놓고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이 뤼순감옥 일대를 팠다. 1차는 3월 25일부터 4월 2일까지, 2차는 4월 10일부터 29일까지. 결과는 깨진 그릇과 장아찌 항아리, 생활 폐기물뿐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중국 측은 처음부터 둥산포를 주장했는데, 한국이 뤼순 감옥 형무소장 딸의 사진 두 장을 근거로 원보산을 밀어붙인 결과였다. 그 실패 이후 정부 차원의 추가 시도는 없다.
왜 멈췄을까. 자료가 부족해서도, 기술이 없어서도 아니다. 중국이 허락하지 않아서다. 중국은 안중근 의사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 즉 북한 지역이라는 점을 들어 남북이 공동으로 신청해야 협조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지 관계자들도 중앙 정부의 지시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발굴이 막힌 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외교의 문제다.
외교는 신뢰 위에서 움직인다. 신뢰는 일관성에서 나온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집히는 나라와 어느 상대국이 장기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하려 하겠는가.
통일 외교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한 정부가 쌓은 신뢰와 합의가 다음 정부 들어 뒤집히는 걸 상대방은 수십 년째 지켜봤다. 그 불신의 구조는 독립운동 역사를 대하는 방식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이회영, 이상룡, 나철. 이분들의 공적이 보수 정권에서 인정됐다가 진보 정권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의 업적은 정권의 색깔과 무관하다. 훈격 재평가든, 유해봉환이든, 옳은 일이라면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가야 한다. 그게 되지 않으니 신뢰가 없는 것이다.
통일 외교의 실패와 독립 역사 정책의 표류는 뿌리가 같다. 5년마다 리셋되는 나라는 백 년짜리 약속을 할 수 없다.
2023년 3월, 정부 수립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운동가 훈격 재평가에 착수했다. 공적에 비해 낮은 훈격을 받아온 이회영, 이상룡, 최재형, 김상옥, 박상진, 나철, 헐버트 일곱 분을 다시 평가하겠다는 것이었다. 6개월 한시 운영을 목표로 출범했다. 그 이후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종교 삼종사 유해봉환 논의도 2022년 시작됐다가 그 이후로 소식이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작됐다가 멈추는 일들. 이게 쌓이면 신뢰가 아니라 불신이 쌓인다.
중국 길림성 화룡시 청호촌 작은 구릉에 대종교 삼종사의 묘역이 있다. 홍암 나철, 무원 김교헌, 백포 서일. 세 분 모두 건국훈장 수여자다. 나철은 대종교를 창시해 독립운동의 정신적 기반을 세웠고, 방금 언급한 훈격 재평가 논의까지 시작됐던 인물이다. 서일은 북로군정서 총재로 청산리 전투를 조직하고 지원했으며, 김교헌은 무오독립선언에 서명한 39인 중 한 명이다. 묘역은 지금도 있다. 비석도 있다. 중국이 '반일지사 무덤'이라 표기해 관리한다. 찾아가서 모셔오면 된다.
못 하는 게 아니다. 안 하는 것이다.
반면 안중근 의사 유해를 위해서는 매년 새 자료를 찾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뤼순과 하얼빈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발굴단의 이력이 하나씩 더해진다. 더 어려운 일에 공을 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쉬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름은 너무 크다. 뭔가 하는 척하기에 이보다 좋은 소재가 없다. 그 이름 뒤에서 정작 해야 할 일들이 밀린다.
삼종사 유해봉환도 해내지 못하면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말하는 건 순서가 맞지 않는다. 외교는 작은 성과 위에 쌓인다. 신뢰는 일관성에서 온다.
순서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