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뉴욕 남부지방법원에서 판결이 하나 나왔다.
래코프 판사는 피고인이 공개 AI 플랫폼에 입력한 법률 전략 문서에 대해 변호사 - 의뢰인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공개 AI는 제삼자다. 기밀을 제삼자와 공유한 순간, 특권은 소멸한다. 연방법원 최초 판결이었다.
미국 로펌들이 클라우드 AI 도입을 주저해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의뢰인 기밀을 외부 서버로 보내야 한다는 구조 자체가 문제였는데, 이제 그 우려가 법리로 확인됐다.
커뮤니티가 다른 방향에서 해법을 내놓고 있다.
허깅페이스에 클로드 오퍼스 4.6의 추론 방식을 이식한 27B 모델이 올라왔다. 앤트로픽이 아니라 개발자 커뮤니티가 만든 것이다. 알리바바 오픈소스 모델 위에 클로드 오퍼스 4.6의 연쇄 추론 구조를 학습시켰다. 4비트 양자화 기준 약 16GB VRAM.
RTX 4090 한 장이면 돌아간다.
로컬 모델은 외부 서버가 없다. 인터넷을 끊은 내부망에서 구동하면 데이터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래코프 판사가 문제 삼은 '제삼자 공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보안이 발목 잡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한국은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다.
2024년, 국내 로펌 최초로 AI 법률 챗봇을 출시한 법무법인이 대한변협으로부터 징계위에 회부됐다. 변호사법상 광고 규정 위반이 이유였다. 결국 법인에 과태료 1000만 원이 부과됐고 서비스는 중단됐다. 법인 측은 이를 "한국판 붉은 깃발법"이라고 불렀다.
같은 해 10월 변협은 "소비자가 AI 프로그램을 직접 사용하게 하는 광고를 할 수 없다"는 규칙까지 신설했다. 업계 반발이 거세지자 이 규정은 2025년 7월 삭제됐다. 규제를 만들었다 지우는 사이, 산업은 멈춰 있었다.
입법도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2년 넘게 리걸테크 가이드라인을 준비했다. 변협의 반발로 발표가 계속 미뤄지다 2025년 5월에야 나왔다. 일본은 LLM 법률상담 문제가 불거지자 6개월 만에 기준을 제시했다. 한국은 2년이 걸렸고, 학계에서는 그마저도 "사실상 규제"라는 평가가 나왔다. AI 발전 속도가 입법 주기를 앞서가는 게 아니라, 입법이 처음부터 따라갈 의지가 없었던 것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입법이 막혀 있다고 변호사의 밥그릇이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판례 검색, 계약서 검토, 소송 서면 초안 작성.
이 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AI가 하고 있다. 개인이나 중소형펌이나 대형이나 할 것 없이 AI를 사용하는 변호사들은 늘어가고 있다. 안 쓰고 경쟁이 안 되는 시점까지 온 듯하다.
검찰은 2025년 8월부터 AI 판례 검색 서비스를 정식 도입했다. 대법원은 올해 2월 재판지원 AI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다. 국내 대형 로펌들은 내부망 기반 폐쇄형 AI를 조용히 가동하고 있다. 규제 덕분에 일반 시민은 AI 법률 서비스를 쓰기 어렵지만, 로펌 내부에서는 AI가 이미 일하고 있다.
리걸테크 업계에서 오래전부터 나오는 말이 있다.
AI가 변호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AI를 쓰는 변호사가 쓰지 않는 변호사를 대체한다는 것.
영국은 AI 로펌을 공식 인가했다. 한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는 "내부 규제에 발이 묶여 갈라파고스가 되는 사이, 법률 AI 시장의 주도권은 해외 빅테크에 넘어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판결문 문제는 이 구조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사법부 재판지원 AI는 2013년 이후 판결문만 학습 데이터로 쓴다. 하급심 판결문은 체계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한국 법률 AI는 처음부터 데이터 빈곤 상태로 출발하는 구조다. 2025년에는 경찰이 AI가 만들어낸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검증 없이 불송치 결정문에 인용한 사건이 확인됐다. 데이터가 없으니 AI가 약하고, AI가 약하니 신뢰를 얻지 못하고, 신뢰를 얻지 못하니 공개가 안 된다는 악순환이다.
형사전자소송은 당초 2025년 6월 예정이었다.
검찰·경찰·해경·공수처·법무부 간 시스템 연계가 풀리지 않아 같은 해 10월로 연기됐다.
기술이 준비됐어도 기관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 속도는 AI 발전 속도와 다르다.
RTX 4090 한 장. 내부망. 외부 서버 없음.
미국에서는 이 조합이 이미 법리 문제의 해답이 되고 있다. 밥그릇을 지키는 건 제도가 아니라 AI를 먼저 쓰는 사람들이다.
자본과 인력이 아니라 AI 활용 능력이 경쟁력을 가르는 시대.
그 격차는 기술이 만드는 게 아니다.
누가 먼저 쓰느냐가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