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질문 앞에 서는 법

권력과 언론, 두 개의 자격

1997년 10월 8일, 방송 3사 채널을 통해 7시간 생중계된 이 장면은 지금도 한국 민주주의의 한 단면으로 기억된다. 극우 성향의 월간 《한국논단》이 주최한 '대통령 후보 사상검증 대토론회'에 김대중 후보가 직접 나선 것이다. 토론회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사회를 맡은 발행인 이도형은 미리 준비해 온 질문지를 손에 들고 "김정일이 김 후보를 제일 좋아한다고 하던데 나를 설득해 보라"고 몰아붙였고, 진행 내내 용공 의혹이 쏟아졌다. KBS 내부에서조차 "극우세력이 방송전파를 7시간 점령했다"는 말이 나왔다.


김대중은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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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부터 줄곧 색깔론에 시달려온 그였다.

1992년 대선 패배 이후 DJP 연합을 통한 중도 연합 전략, 군 출신 인사 영입 등으로 '좌파' 프레임을 걷어내려 했지만, 1997년 막바지까지 색깔론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이 적대적인 자리를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직접 밝히는 기회로 삼았다. 토론회 이후 진행된 갤럽 조사에서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은 소폭 하락했지만, 반감도는 2.1%포인트 감소했다. 불편한 질문 앞에 당당히 선 것이 오히려 신뢰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 장면이 단순히 선거 전략의 이야기로 읽힌다면 절반만 본 것이다. 핵심은 따로 있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 사람인가, 그것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최근 몇 년간의 풍경은 이와는 결이 다르다. 기자의 질문을 물리적으로 막는 장면, 언론을 '지라시'라고 폄하하는 발언들. 불편한 질문을 차단하고 적대적인 공간을 피해가는 방식이다. 이 두 장면 사이에는 단순한 언론 대응 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있다. 불편한 질문이 허용되는 공간에서 민주주의는 자란다. 그 질문 앞에 서는 지도자에게서 성숙해진다.


토머스 제퍼슨은 1787년 에드워드 캐링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후자를 택하겠다."


권력보다 언론의 존재가 우선임을 천명한 말이었다.

권력이 언론을 두려워해야지, 언론이 권력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서울대 정치학과 박원호 교수가 2017년 1월 정동칼럼에서 쓴 구절은 언론의 존재를 옹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기자들은 민의에 의해 선출된 적이 없어도 기자증 하나 목에 걸고 정부부처를 출입하고, 고시에 합격한 적이 없어도 정책을 난도질하며, 그 흔한 학위 하나 없어도 세상 만물에 대해 오지랖이 넓음을 자랑할 수 있다. 언론을 입법·사법·행정에 뒤이은 '제4부'라 부르는 것도 아마 자신들이 지어낸 말일지 모른다. 대신 그러한 자격이 주어진 조건은 딱 하나, 대통령이건 민정수석이건 레이저 눈총에 끄떡하지 않아야 한다."


선출도, 자격증도, 학위도 필요 없다. 단 하나, 권력 앞에서 눈 하나 깜짝 않는 것. 그게 자격의 전부라는 말은 동시에, 그걸 갖추지 못한 언론에 대한 준엄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권력의 눈총에 슬금슬금 물러서고, 광고주 눈치를 보며 기사를 접고, 받아쓰기로 지면을 채우는 언론이라면 제4부를 자처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논의는 양방향이어야 한다. 권력이 언론을 막아서는 안 된다. 동시에 언론도 그 자리에 걸맞은 언론이어야 한다. 기자의 질문을 신체적으로 제지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작동을 멈추는 일이다. 하지만 그 질문이 권력에 기생하거나 진영의 대리전에 복무한다면, 그것 역시 민주주의를 좀먹는 일이다.


1997년의 사상검증 토론회가 부당했던 것은, 언론의 이름을 빌렸으나 언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권력은 언론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은 그 두려움을 받을 자격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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